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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Nov 15. 2023

수학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_전화 없는 삼일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 몇 달간 들떠있던 기분을 여행가방에 꾹꾹 눌러 담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용인의 호텔에 숙소를 잡고 한국민속촌과 에버랜드와 과천과학관을 보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문경에 들러 레일바이크를 타는 일정이다. 부산에서 용인까지 가는 길이 멀기에 학교에서 7시에 출발했다. 아침에 간편하지만 든든한 스팸 초밥을 준비하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렵게 떼어 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짙푸른 새벽하늘에 별 하나만 반짝인다.     


 아들은 수학여행을 가면서 내 전화도 가져갔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전화기가 없다. 3일간 나는 전화도 문자도 실시간 카톡도 할 수 없다. 이런 스마트한 세상에 아날로그 생활이라니. 그나마 컴퓨터에 깔아놓은 카카오톡으로 로그인하여 밀린 카톡이라도 할 수 있다. 삼일간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잠도 잘 잤는데, 그제와 어제 눈꺼풀이 무겁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보고 싶은 그리움인가 보다. 내가 친구들과 여행한다고 2박 3일씩 집을 떠나 있는 때는 있었지만, 아이가 집을 떠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모든 것의 시작은 첫째인 딸이 했고, 아들은 항상 그다음이었다. 나는 딸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처음’에 많이 설렌다. 아들 차례는 두 번째가 주는 익숙함에 편안함을 갖는다. 그러나 수학여행은 아들이 우리 집에서 처음 떠났다. 코로나19로 딸은 당일형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때도 딸은 내 전화기를 가지고 갔다. 딸과 전화기는 저녁이면 나의 품에 돌아왔다. 이번 수학여행은 아들이 3일간이나 내 품을 떠났고, 전화기도 아들을 따라갔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중간 연락이 없다. 저녁이 되어서야 아빠에게 전화해서 ‘오늘 에버랜드에서 아마존 익스프레스를 여섯 번 탔다’ 라거나 ‘소떡소떡이 맛있다’ 라거나 신나고 들떠서 소식을 전한다. 피곤하면서도 행복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오늘 하루도 잘 보냈구나”하며 안심한다.     

 딸은 그동안 외동 놀이를 한다. 올해 잠자리 독립을 했는데, 두 밤을 엄마·아빠 사이에서 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공부를 미리 끝내 저녁에 엄마·아빠랑 놀겠다는 말도 한다. 작년에 숙박형 수학여행을 원했지만, 가지 못한 딸은 동생의 이번 수학여행이 부럽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딸과 즐거운 두 밤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하고 밤에는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자리는 딸을 가운데에 두고 ‘까꿍’ 놀이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청소년이라고 으스대던 딸은 동심으로 돌아가 엄마·아빠가 해주는 ‘까꿍’을 즐긴다. 온 식구가 즐거움에 부족함이 없는 2박 3일이다.     

 여기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더해진다. 내일이 수능이라서 시험을 보는 아는 아이에게 용돈을 보내고 싶은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번거롭고 해서 카카오톡으로 송금하려 했다. 카카오톡에 있는 돈이 부족하다. 나는 지금도 계좌 이체하려면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간다. 이런 나였으니, 갑자기 계좌를 연결하는 것에 번거로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지난 주말에 대학 동창들과 만났었는데, 오늘 결산한다는 카톡이 왔다. 그래서 친구에게 다짜고짜 ‘십만 원만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면, 여행경비와 십만 원을 합쳐서 계좌로 송금할게’라고 했더니 친구가 흔쾌히 카카오톡으로 송금해 줬다. ‘고마워’ 인사를 하는 참에 갑자기 송금이 취소되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단체 카톡 대화를 보던 다른 친구가 혹시나 사기가 의심스러워 나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안 받으니 친구에게 서둘러 전화해서 해킹된 것 같다고 말했단다. 친구는 혹시 내가 맞냐고 묻는다. 아뿔싸! 충분히 오해가 있을 만하다. 너무 웃겼지만, 어쨌든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아들이 수학여행을 가면서 내 전화기를 가지고 가서 지금 컴퓨터로 카톡 중이라고…. 마침 주말에 만났을 때 ‘내일 아들이 수학여행 가’라는 말을 해둔 터라 모두 깔깔대고 웃고 다시 송금받았다. 반드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는 세상이다.    

 금방 학교 알림톡으로 아이들이 4시 30분에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두 시간 후면 아들이 나의 품으로 온다. 눈은 자꾸 시곗바늘만 쳐다본다. 분침이 한 바퀴 도는 일 분은 엿가락을 늘린 것처럼 느리다. 친구들과 함께한 2박 3일에서 한 뼘 커진 아이가 기대된다. 더불어 가져올 이야기보따리와 선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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