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기억력테스트는 덤
·1단계 - 뽀로로 크롱 에디 포비 해리 로디 폴리 로이 엠버 헬리 타요 로기 라니 가니 번개맨
·2단계 - 또봇 친구들 카봇 친구들 터닝메카드 친구들 겨울왕국 친구들
·3단계 - 피카추 꼬북이 파이리 팽돌이
·4단계 - 에스콥스 정한 도겸 디노 승관 호시 원우 우지 조슈아 민규 버논 디에잇 준
아이들을 낳자마자 수많은 이름을 외워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 그렇듯 거실 매트는 뽀로로가 깔리고, 생일 케이크는 폴리와 엠버여야 했고, 타요를 보러 버스(2010년대 초반에 서울버스는 타요가 그려졌다)를 타곤 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친구들은 뽀로로와 폴리와 타요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름을 알아야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지금은 친정엄마의 차가 모닝이라 그 모델로 만든 또봇의 ‘디’만 생각나지만, 이름도 어려운 친구들이 너무 많다. 특히 터닝메카드에 이르자 이름을 외우다가 멀미가 날 뻔했다. 끈질긴 아들은 장난감 하나하나를 나에게 보여주며 이름을 알려주었다. 악동 기질이 발동되어 역으로 나도 아이에게 그리스·로마 신화 신들을 외우게 했다. 일대일로 하나씩 서로 외우기로 했었다. 그 덕인지 아이는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그 많은 신들을 모두 꿰었다. 예닐곱 나이 때는 포켓몬스터에 빠져들었는데, 그때부터는 아예 시도도 안 하고 피카추 말고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리고 지금 중학생 아이들은 아이돌 그룹인 세븐틴에 빠졌다.
겨울방학 동안 우리 집에는 세븐틴 타임이 있었다. 아이들이 일과를 열 시까지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한 시간 동안 유튜브 콘텐츠인 <Going Seventeen>을 볼 수 있었다. 한때는 방학이면 지난 드라마를 다 같이 하루에 한 편씩 보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너무 늦게 자서 빠른 잠자리를 위한 당근으로 아이돌 그룹 세븐틴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옆에서 같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다 보니 열세 명의 멤버 이름을 다 외웠다. 자랑삼아 이야기하니 이제 사람과 이름을 연결해서 맨날 물어본다. 저 사람은 누구야? 저기 저 사람은 누구야? 엄마가 관심 가져주니 좋은가보다. 나도 아이들과 나눌 것이 있으니 좋다. 이런 시간은 가끔 나를 어린 시절로 안내한다. 지금 우리 애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엄마랑 만화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는 밤낮없이 일하셨다. 두 분은 농사일도 하시고, 엄마는 때때로 회사도 다니셨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일요일 아침이면 밥을 먹자마자 『세계 명작 극장』에서 해주는 만화영화를 열심히 챙겨보았다. 그날은 모처럼 엄마가 여유 있는 날이었나 보다. 티비에서는 「소공녀 세라」를 했다. 영국 귀족학교의 최고 VIP이었던 세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학교의 옥탑방에서 허드렛일 하며 지냈다. 항상 바쁘시던 엄마는 아침상을 치우고 같이 세라를 보셨다. 그러고는 자꾸 물으신다. 쟤는 누구이고, 쟤는 왜 저런 데서 있는지, 지금은 왜 그러냐고. 나는 너무 신나서 지나간 세라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마도 그러고는 엄마에게 물은 것 같다. ‘엄마도 재밌어?’ 엄마는 ‘응, 엄마도 재밌어’라고 대답하셨을 거다. 엄마와 함께 만화영화를 보던 그날 아침은 행복한 날로 기억된다. 어떤 큰 이벤트도 없었고, 그저 엄마랑 같이 짧은 만화영화를 봤을 뿐인데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은 행복이다. 그 순간 엄마와 나는 「소공녀 세라」를 공유했다. 그 뒤로 일요일만 되면 만화영화를 같이 보자고 엄마를 졸랐다. 그 행복한 기억이 더 연장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엄마와 함께 만화영화를 본 것은 「소공녀 세라」가 유일한 것 같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바쁜 만큼 항상 피곤하셨다. 그래도 찬란한 그날 아침의 행복은 반짝이는 유리 조각처럼 나의 마음에 반짝임을 새겨놓았다. 더불어 「소공녀 세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부자였을 때도 겸손하던 세라가 가난해졌을 때도 그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다 다시 아버지의 유산을 찾아 부자가 되는 세라는 나의 우상이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 유치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좋다.
언제나 일이 힘든 부모님이시지만,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셨다. 비싸지는 않더라도 사시사철 새 옷을 사주셨다. 외식이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가끔 중국요릿집이나 돼지갈빗집에서 식사하곤 했다. 무슨 날이 되면 꼭 나들이도 다녔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당연했다. 어미 제비가 주는 것을 쪽쪽 받아먹는 새끼 제비처럼 우리는 그저 엄마가 넣어주는 것들로 당연하게 속을 채웠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무슨 일이든 관심과 사랑과 노력이 필요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은 작아지지 않았는지, 새 옷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날씨에 이 옷이 맞는지 살피는 것에 마음이 필요했다. 나도 엄마처럼 주둥이만 잘 벌리는 새끼 제비에서 먹이를 잘 물어다 주는 어미 제비로 잘 자랐다. 엄마가 우리 삼 남매에게 해주던 그대로 먹이를 물어다가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듯 관심과 사랑을 물려받았다.
내가 세븐틴 멤버를 제대로 알아갈수록 아이들은 신난다. 고잉 세븐틴이나, 소공녀 세라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공유하고 장소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진 추억은 다시 재생산되어, 또 다른 이야기와 연결한다. 겨울방학은 끝나고 잠시 <Going Seventeen>과 이별한다. 봄방학에 <나나투어 with Seventeen>으로 다시 세븐틴을 만날 계획이다. 내게 그 짧은 시간이 엄마에 대한 행복한 기억으로 오래 남았듯이, 아이들도 그 세계를 만나는 나를 추억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