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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Apr 07. 2024

나트랑에서 만난 베트남인들

_여행이야기는 없는 베트남 생각

  나트랑으로 휴가를 갔다. 베트남은 수년 전에 다낭에 다녀온 이후로 두 번째였다. 베트남 항공인 비엣젯을 타는 순간 베트남이 그대로 다가왔다. 광택이 나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때부터 강렬한 붉은색에 빠져들었다. 나트랑은 붉은색과 노란색 도시였다. 그냥 붉은 것도 아니고 번쩍이는 광택이 났고, 노랑도 황금처럼 반짝거렸다.      


  베트남의 국기는 금성홍기(Cờ đỏ sao vàng 旗��黃) 또는 황성적기라고 부른다. 공산권 나라의 색이 그렇듯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색 바탕 위에 공산당을 의미하는 노란 별이 그려져 있다. 문득 단순한 공산주의 이념보다 중국 문화권인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베트남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 노란색과 붉은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과 이념이 맞아 강렬한 하나의 큼직한 별이 붉은 바탕 위에서 빛을 발한다. 손님을 맞이하는 리조트의 직원들은 공단으로 된 붉은색 아오자이 속에 노란 바지를 입었고, 나무에는 빨강 복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트랑에서 느낀 것은 그네들에게 과한 친절은 없다. 딱 거기까지. 다낭에 갔을 때는 몰랐는데, 나트랑에서는 그들의 딱딱함이 좀 불편했다. 나는 과잉 친절이나 무조건 손님에게 웃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 또한 감정노동이기 때문에 내가 식당에 가든 상점에 가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베트남의 적당한 친절 또는 무심함에 놀랐던 이유는 지난번에 다녀온 캄보디아와 너무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머문 시간은 고작 6일이지만,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친절하고 항상 웃고 있었다. 씨엠립의 툭툭 기사들은 유창한 한국말로 호객을 위한 인사를 했고, 관광지에서는 직원들이 짧은 한국어로 인사를 해줬다. 앙코르와트의 유적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캄보디아인들의 따뜻함이었다. 어쩌면 나는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같은 프랑스 식민지를 겪었고, 같은 공산주의 시대도 있었던 이 나라에 대해서 캄보디아와 같은 친절을 기대했나 보다. 그런 생각 자체가 오만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베트남인들이 외국인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프랑스인들은 1883년에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베트남인들은 호찌민의 주도하에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1940년에는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일본이 패망하자 다시 프랑스인들이 들어왔다. 일본이 침공할 때는 베트남을 버리고 도망한 프랑스인들의 지배를 다시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8년간 베트남인들은 독립전쟁을 벌였고, 1954년에서야 정식으로 독립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독립 국가라는 이름은 허울만 좋았다. 남과 북이 갈라져 북쪽에는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이,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공화국이 들어섰다. 프랑스-일본에 이어 이제 미국이 베트남의 주인행세를 한 것이다. 분단상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통일하고 싶은 베트남인들의 충돌이 질기게도 15년이나 이어졌고, 1975년에서야 베트남은 진정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한미 동맹과 외화획득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파견했다.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나 고엽제 살포가 많이 이뤄졌다. 그리고 라이따이한. 한국인이 버리고 간 아이들. 베트남과 한국의 사이가 좋기 힘든 조건이었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그런 존재다. 자기 땅을 수탈해 가는 존재. 1883년부터 1975년까지 90여 년간 다양한 나라가 들어와서 빼앗아 갔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국군의 만행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고, 그러면서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경제 협력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산업과 문화와 관광과 인적자원이 활발하게 교류되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그들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겹친다. 우리도 1876년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외국의 수탈을 겪었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독립과 동시에 분단국가가 되었다. 3년간의 전쟁은 한반도를 초토화했다. 맨바닥에서 모든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앞만 보고 달려 오늘의 영화를 누린다. 역사도 비슷하고 잡초처럼 질긴 근성과 기질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유독 무표정하기로 유명한 민족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들에게 과한 친절을 기대한 내가 부끄럽다. 생각을 마쳤으니 이제 휴가를 즐길 차례다.    

  나트랑 휴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리조트는 깨끗하고 편리했고, 테마파크는 즐길 거리‧볼거리가 가득했다. 다양한 음식은 맛있었다. 도시에는 소소하지만, 힌두교‧불교‧천주교 건축물도 있어서 다양한 종교를 엿볼 수 있었다. 연유가 가득한 시원한 베트남 커피는 한낮의 갈증을 몰아내 주었고, 쌉쌀한 베트남 맥주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정원 관리사가 즉석에서 깎아준 코코넛 주스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석양빛에 날개를 펄럭이는 홍학의 군무는 가끔 떠오를 것 같다. 마지막 밤 보았던 빈펄 섬의 야경은 사진처럼 머리에 남았다.     

  Nha Trang. 우리는 나트랑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나쨩이라고 부른다. ‘갈대 강’이라는 의미지만, ‘나 짱인데’처럼 들린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집들은 이쁘고. 나트랑 여행은 ‘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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