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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Apr 18. 2024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_나의 뒷배는 엄마

  서랍을 여니 무심하게 놓여있는 낯익은 반지가 눈에 띈다. 누런 반지에는 “건강”이라고 쓰여 있다. 엄마가 반지에 새겨놓은 주술처럼, 나는 건강하다.      


  그 반지는 대입 시험 백일을 남겨 놓았을 때 엄마가 맞춰 주신 반지이다. 그 당시에 18K나 14K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반지는 만지는 대로 휘어지고 닳는 24K 순금 반지이다. 금은방 사장님이 반지 안에 글씨를 써 주시겠다며 “합격”이라고 써넣을까요? 물었지만 엄마의 대답은 “건강”이었다. 대입 시험 100일 전, 사장님도 의아하고 나도 의아했던 그 순간.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건강을 써주세요”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사장님은 반지 안에 “건강”을 써넣어 주셨고, 나는 누렇게 번쩍이는 황금을 손가락에 자랑삼아 끼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참 건강하다. 반지가 생긴 뒤로 아픈 적이 없다. 엄마의 바람이 통했다.      


  나는 어렸을 때 자주 아팠다. 태어날 때부터 영아산통은 기본이고 배앓이도 자주 하여, 꼬꼬마 때부터 원기소나 비오비타를 자주 먹었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익산에서 전주까지 아빠는 나를 둘러업고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며 전주의 소아과를 다니셨다. 익산의 소아과에서는 전혀 차도가 없다가 꼭 전주 그 소아과만 가면 나았단다. 그러니 아빠는 내가 아프면 무조건 전주 소아과로 가실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아빠는 무용담처럼 그때 말씀을 하신다. 전주시 덕진구 어디어디. 당장이라도 그 소아과를 찾아가 증명할 기세이다. 삼 남매를 데리고 외출할라치면 큰딸인 나는 아빠가 업고, 막둥이는 엄마가 업고, 둘째는 걷게 했다고 하신다. 햇빛에도 픽픽 쓰러지던 나였지만, 덜렁거리던 성격에 외상도 많이 입었다. 외할머니가 냇가에서 빨래할 때 떠내려가다가 우연히 지나던 아빠가 구해주기도 했고, 외갓집 제사에서 대나무 젓가락을 입에 물고 놀다가 대청마루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가장 심하게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홧줄 연결하는 기계에서 떨어져 왼쪽 허벅지에 살이 패는 사고도 당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놀라서 병원에 나를 데리고 갔고,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결석은 그때 처음 했다. 그 덕분에 6년 개근을 놓쳐서인지 나는 중학교-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3년 개근에 집착했다. 그 뒤로 큰 외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입안에 구창(입안 부스럼)이 자주 생겨 조퇴를 밥 먹듯이 하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보라색 약을 바르곤 했다. 지금도 입안 전체가 보라색으로 변해 입만 열면 보라색 혀가 날름거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아프지만 말고 잘 자라주길 바라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러니 대입 시험 반지에 “건강”을 새겨 넣을 생각을 하셨겠지. 다행히 엄마의 주술 덕분에 나는 그 뒤로 아픈 적이 없다. 결혼 초에 화상을 입은 것 빼고는 오장육부도 튼튼하고 다른 외상도 없다.      


  엄마는 2000년 밀레니엄이라고 온 세상이 들떴을 때 첫해가 떠오르는 날, 나를 데리고 미륵산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먹고사는 것이 바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셨을 것 같은데, 세기가 바뀌는 것은 아셨나 보다. 엄마의 소원은 단 한 가지. 노처녀로 늙어갈지도 모를 딸을 위해 소원을 빌고 싶었던 거다. 우리 집은 익산 남쪽인데 엄마는 굳이 집에서도 먼 북쪽 미륵산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지금도 등산을 싫어하는 나이니, 그때 얼마나 투덜댔었는지 늘어진 채 걸어가는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새벽 산길에 서툰 우리는 너무 늦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막상 미륵산 꼭대기에 오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새해를 보고 연신 기도하셨다. 마음속으로 ‘미신이야’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그해가 가기 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렇게 엄마의 소원은 또 이루어졌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엄마는 살뜰하게 챙겨주신다. 부산에서 익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고 차에 휘발유도 넣어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 주신다. 간혹 내가 좋아하는 홍어 무침이나 말린 생선 등을 싸 주기도 하신다. 나는 내가 결혼할 당시의 엄마 나이가 되었고,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 눈에 나는 아이인가 보다. 짧은 1박 2일 머물다가 돌아가는 나를 보고 환하게 미소 지어주시는 엄마, 엄마가 내 든든한 뒷배임을 이제 깨달았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성격도 닮았다. 미어캣처럼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닮았다. 내 귀는 항상 열려서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까 기다린다. 나와 달리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도 고맙고, 안전 염려증 엄마·아빠의 잔소리에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아 고맙다.      


  우리 집 아이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본다. 중2인 첫째는 다음 주 중간고사부터 내신이 반영되고, 중1인 둘째는 2학기 중간고사부터 내신이 반영된다. 4월이 되면서 시험 준비한다고 도서관 다니는 딸을 보며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기특하다.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것도 좋지만 나의 엄마가 내 반지에 ‘건강’을 새겨주셨듯이 나도 아이들의 공부보다 ‘건강’을 더 마음에 새긴다. 나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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