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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Sep 02. 2024

비슬산에서 만난 도성과 관기

문학계간지 『여기』62호 2024 가을호

  비슬산에 두 스님이 있었는데, 관기(觀機)는 남쪽 고개에 살고 도성(道成)은 북쪽 굴에서 지냈다. 나무가 남쪽으로 누우면 관기가 도성에게, 북쪽으로 굽어지면 도성이 관기에게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 높은 바위 위에서 좌선하던 도성은 홀연히 공중으로 솟구쳐 사라졌고, 뒤이어 관기도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두 스님을 찬양하며 노래 불렀다.     


 달빛을 밟고 서로 찾아 구름과 물을 희롱하던

 그들의 풍류가 몇백 년이나 지났는가.

 안개와 노을 낀 골짜기엔 고목만이 남았는데

 찬 그림자 흔들리며 서로 맞이하는 듯하네.

   『삼국유사』 「제5권 피은(避隱) 제8」

         

  비슬산 유가사 기록에 산의 모양새가 비파(琵)와 거문고(瑟)를 닮았다 하여 비슬산이라고 부른단다. 일연스님은 84년의 생애 동안 37년을 비슬산에서 지내셨다. 일연스님이 살았던 시대는 몽골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만들며 부처님의 공력에 간절히 기대던 때였다. 외적이 지칠 줄 모르는 말을 몰아치며 국토를 유린하고 소중한 문화가 불타고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워하던 일연스님은 전국을 돌며 이야기를 모아 바랑에 담았다. 차곡차곡 바랑에 쌓인 설화와 전설은 일연스님의 붓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위대한 문화유산인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 바로 이 비슬산이다. 비슬산은 王이 네 개나 있는 왕 중의 왕이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이곳에서 천 명이 득도한다며 지금 아홉 성인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있다’라고 썼다. 아홉에 이어 비슬산의 열 번째 성인은 일연스님이 자신이 아니었을까.     

  일연스님과 『삼국유사』를 찾아 비슬산으로 문학기행을 떠난다. 새벽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지만, 발걸음을 가볍게 사뿐사뿐 내디딘다. 버스에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언제나 『삼국유사』를 가슴에 품으신 명예 이사장님의 설명도 듣고, 신나게 경매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비슬산 유가사에 닿았다. 유가사는 천년 넘은 고찰인데, 고려시대에는 삼천 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큰 절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재건과 증축을 거쳐 오늘까지 이어 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신 주지 스님의 말씀도 듣고 108 돌탑과 시비들을 소리 내 읊조리며 산책한다. 구슬처럼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들의 시 낭송에 빠져든다. 이런 즐거움이야말로 문학기행의 큰 매력이다.           

  멀지는 않지만 가파른 길이라 차를 타고 도성암으로 향한다. 산나물로 준비된 점심 공양을 맛있게 먹으니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근육이 부풀 듯, 위장이 튼튼해지는 기분이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오월의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었다가 도통 바위를 향해 올랐다. 웅장한 도통 바위에 도착하니 비슬산 중봉들이 한 손에 잡힌다. 이곳이 도성 스님이 도를 닦은 곳이구나 생각하니 커다란 바위에서 신력이 느껴진다. 두 손을 곱게 모으고 합장하며 인사한다. 『삼국유사』 행간에서 보았던 도성과 관기의 우정이 보일 듯하다. 북쪽 바위굴과 남쪽 고개에 살며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던 두 선사. 열심히 수행하여 하늘의 이치를 깨치고(觀機) 부처님의 법을 이루었다(道成).      

  『삼국유사』에는 관기와 도성뿐만 아니라 광덕과 염장,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등 두 스님의 우정 이야기가 여럿 있다. 스님들의 우정을 읽다보니 나의 우정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책을 펼칠 때, 간혹 언젠가 받았던 친구들의 편지가 있다. 한 자 한 자 정성으로 써 내려간 편지를 보면 그때는 그 친구와의 우정이 영원할 것이라 여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양한 이유로 소식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관계가 돼버렸다. 지금 남은 친구들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며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한다. 반가움이 묻어나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오늘의 안녕을 전한다. 한 번씩 이름과 추억만 남은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던 참에, 얼마 전에 중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십 년만이다. 나는 전화기를 몇 번 바꾸면서 번호가 사라졌고, 그 친구는 오랫동안 내 전화번호를 간직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안 하면 앞으로는 더 못하겠다 싶어 전화했다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녀의 용기에 반갑고 고마웠다. 어느새 나는 중학생이 되어 그 친구의 집 앞에서 서성이던 때로 돌아간다. 도성암 앞에 있으니 문득 그 애가 생각났다. ‘잘 지내지!’ 문자를 보낸다. 친구도 답장을 바로 보낸다. ‘어^^ 잘 지내.’     

  돌아오는 길에 옥연지 송해공원과 창녕 교동 고분군에 들려 산책했다.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호수와 이천 년 동안 대가야를 품은 고분들 사이의 산책은 『삼국유사』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토끼풀이 가득한 고분군 산책로에서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띈다. 찾으려 애쓸 때는 보이지 않더니만, 이렇게 좋은 날에 행운을 더하라는 듯 네 잎을 뽐내고 있는 클로버가 큼직하게 보인다. 일연스님과 『삼국유사』와 나와 친구. 오늘 얻은 수확이 네 잎 클로버에 남았다. 어스름했던 새벽 출발길처럼 어둑한 황혼길 버스 안에서 노곤한 피로감에 잠시 눈을 감는다. 잔잔하게 흐르는 『삼국유사』에 스며들며 점점 단꿈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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