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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Oct 03. 2024

개천절에 생각나는 익산 단군 성묘

익산 시민의 날 10월 3일

   우리 동네에 “단군 사당”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왜 이곳에 단군 사당이 있나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고, 당연히 모든 동네에는 으레 단군 사당이 하나쯤은 있는 줄 알았다. 그냥 마을에 있는 커다란 당산나무처럼, 단군 사당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결혼하고 타지로 이사하고는 친정에 갈 때마다 빛바래고 낡은 단군 사당 이정표를 지나친다. ‘아 맞다. 이곳에 단군 사당이 있었지, 근처가 아파트로 다 바뀌고 있는데도 아직도 남아 있네’라면서 처음 의문을 품은 것이 몇 년 전이다. 단군 사당은 호남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있다. 어느 추석에 연도 날릴 겸 아이들이랑 단군 사당에 올랐다. 문이 열려 있을 줄 알았던 단군 사당은 굳게 닫혀 있었다. 까치발을 들어 담벼락 너머 조그만 사당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사당 안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갑자기 사당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니 일 년에 봄과 가을에 두 번 대문이 열리고 제사를 모신단다. 내가 익산에 살고 있으면 그날에 가기 쉽겠지만, 참 난감했다.      

  그렇게 담 밖에서 기웃거리기를 몇 년. 2022년 10월 3일에 연휴를 이용하여 익산에 갔다. 기쁜 마음으로 개천절 행사를 고대했다. 그런데 전날부터 가을비가 세차게 내려서 고민이 컸고, 아직 코로나19로 행사들이 제약받는 상황이라 제사를 모시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 혼자서 단군 사당을 찾았다. 항상 굳세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마당이 분주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오늘 제사를 언제 모시는지 물었더니 몇 시라고 알려주신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준비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다행히 비는 멎었지만, 마당은 질퍽했고, 비는 언제 내릴지 모르는 찌푸린 하늘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하늘님의 손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고 세찬 비를 멈추어 주어서 다행이었다.     

  익산 동산동에 단군 사당이 있게 된 유래는 이렇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이회영 애국지사의 육 형제 중 막내인 이시영 선생이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독립운동 기간 내내 품고 다닌 단군 영정을 모실 곳을 찾았다. 익산이 선택되었고, 지역 유림이 돈을 모아 사당을 지었다. 1947년 3월 15일에 단군 사당 기공식을 시작하여 1951년 10월 3일 낙성식을 거행했다. 그래서 3월 15일(음력)에 어천대제를, 10월 3일(양력)에 개천대제를 모신다. 익산에서도 왜 동산동이 선택되었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나름대로 근거를 찾아보았다. 『후한서』(5세기. 중국 남송 범엽 지음)에 ‘처음에,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서 유민 수천 명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와 마한을 파하고 스스로 한왕이 되었다. 初 朝鮮王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 攻馬韓 破之 自立爲韓王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라는 구절이 있는데 준왕이 들어온 곳이 김제에서부터 익산 동산동을 거쳐 전주로 가는 만경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준왕이 망국민을 이끌고 요동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만경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의 널따란 평야에 시선을 두고 뱃길을 멈추지 않았을까. ‘만개의 밭고랑’을 지난다는 만경강(萬頃江)이 유유히 흐르는 이곳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반도 최고의 황금 들판인 호남평야이다. 이시영 선생과 지역의 유림은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익산 동산동을 단군을 모실 곳으로 정했을 거라 나 혼자 생각해 본다.     

  나는 어린 시절 그대로 단군 사당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익산 단군 성묘>이다. 이시영 선생이 기증했다는 단군 영정의 진본은 안전상의 이유로 익산시가 보관하고 있고, 단군 성묘 천진전에 모셔진 영정은 영인본이다. 단군 영정은 1910년대 제작되었다고 추정되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천진단 문이 열리고 감실의 문도 열리자 우리가 흔하게 보는 근엄하게 생긴 단군왕검이 아니고, 산신령 같은 온화한 모습의 단군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방긋 웃으시며 ‘이제야 왔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단군 성묘 제례는 <단군성조봉성회> 어르신들이 지내시고 익산향교에서도 참여한다. 유림에서 모시는 제사는 처음 보았다. 40여 분간의 제사는 그동안 보았던 다른 제사보다 예스럽고 멋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경건한 의식에 참여한 아이들 표정에도 진지함이 배었다. 흐린 날에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을 보고 어르신들은 한 마디씩 감사의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다. 낮은 담벼락이 있던 동네를 떠나 아파트 빌딩 숲에서 지내니 뿌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깊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던 길에서 의미를 찾고, 여전히 남아 있는 상점에 눈길을 준다. 이름 빼고는 다 바뀐 초등학교 근처를 배회하고 강 따라 산책한다. 그렇게 들여 마신 공기로 텅 빈 가슴속 마음을 채운다. 열망했던 단군 사당에 들어가니 그동안 찾지 못한 퍼즐 하나를 채운 기분이다. 단군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의 뿌리이다. 이시영 선생이 고단한 독립운동 세월 속에서도 단군 영정을 품속에 간직하고 다닌 이유도 우리 한민족이 단군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서 독립하여 단군의 나라를 세우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는 그림이다. 점차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도 세계화, 다문화 등 이제 한나라만의 가치를 추구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반만년 이어온 단군 할아버지가 앞으로 반만년만 더 우리의 할아버지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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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익산은 이리시와 익산군의 통합을 기념하며 5월 10일이 익산 시민의 날이었다. 2024년에 조례를 개정하여 개천절을 익산 시민의 날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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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는 46곳의 단군 성묘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9곳이 있었는데, 광복 후에 지역의 유림이 세워 46곳이 되었으며, 윤한주 국학박사는 발품을 팔아 단군 성묘 답사기인 『한국의 단군 사묘』(2019 덕주)를 펴냈다. 유림은 공자만 모셨을 것 같은데,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에는 모두 한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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