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핑계 저 핑계 기록을 미루다 보니 빛바랜 영수증처럼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용불용설, 쓸 때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잊히기 전 인도에서의 기억을 기록으로 마무리해야겠다. 브런치 에디터가 보내오는 [글 발행 안내]의 채근이 귀찮기도 하고...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핵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되뇐다.
이 말은 오펜하이머가 한 말이 아니다.
힌두교 대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말이다.
바가바드는 '존엄한 자', '거룩한 자', 기타는 '노래'라는 뜻이니, 바가바드기타는 '존엄 또는 거룩한 자의 노래' 정도로 해석되겠다.
타지마할, 쿠툽 미나르, 붉은성, 가트...존엄한 자들의 거처인 인도의 유명 관광지는 포토제닉 하다.
사진 찍기는 좋지만 감동은 그닥 크지 않다. 내가 가본 세상의 유명 관광지는 거개가 다 비슷했다. 스펙터클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쏠쏠 소환되는 기억은 그림엽서 같은 풍경보다는 구린내 나는 바라나시의 골목과 지린내 풍기는 델리의 골목길이다. 그 비좁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다림질하는 아낙의 모습, 그 장면이 익숙해질 즈음 직접 내려가 보았다.
옷을 다리는 데 얼마예요? 했더니 20루피, 한다.
우리 돈 320원 정도.
공식적으로 카스트제도는 없어졌지만 인도의 계급 시스템은 일상 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언젠가 '극한직업'을 통해 봤던 평생 빨래만 하는 카스트 계급 '도비'를 본 적이 있다. 이 아주머니 역시 그 계급의 후손일 것이다. 다림질하시는 이 아주머니, 힐끗 스치는 눈매가 여간 아니다. 뭐랄까, 기품이 느껴진다. 한 분야에서 평생을 일 해온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장인의 품격이랄까... 그런 기운이 전해온다. 우리네 것보다 훨씬 커다란 다리미를 몇 차례 쓰윽 쓱싹 하더니, 다 됐다며 내놓는다. 옷이 금세 반반해졌다. 구겨진 마음까지 펴지는 느낌이다.
난 이런 풍경이 좋다. 평범한 골목길에서 마주하는 일상이 유적지에서 대면하는 이상보다 한결 친근하다. 인도는 그랬다. 두 차례에 걸친 34일간의 인도 여행, 똥총을 쏴대며 어리숙한 여행자를 등치려 한 사내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이 사람들에게 바가바드기타가 무엇인지, 그 내용은 또 무엇인지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죽음'과 '세상의 파괴자'를 언급하며 바가바드기타, 존엄한 자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본다.
"고통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 할 시간이 없다.
정작 두려움은 존엄해야 한다고, 거룩해야 한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두 번째 귀국길 델리 공항에서 라마승을 만났다. "남겨 두는 것은 좋은 것이다"란 화두를 던졌던 첫 번째 그 스님은 아니었지만, 태양신 수리야 앞에 선 모습이 친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