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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Feb 14. 2024

그 많던 코끼리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말이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것이란 사실을 영활 보고 난 뒤에 알았다.

원자폭탄 실험을 한 뒤 오펜하이머가 중얼거렸다고 하는데, 지나친 피해의식이다.

핵폭탄을 만든 사람이 어찌 오펜하이머 한 사람에 뿐이었겠느냔 말이다.


"고대의 창촉은 고대인 한 명이 친한 친구 몇 명에게서 조언과 도움을 얻어 몇 분 내지 몇십 분만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핵탄두를 제조하려면 전 세계의 서로 모 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해야 한다. 지구 깊숙한 곳에서 우라늄 광석을 채취하는

광부에서부터 아원자 입자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기다란 수학공식을 쓰는 이론 물리 학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_유발하라리, <사피엔스>, 67~68p, 김영사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의 3대 고대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인데, 전쟁이야기다.

난 아직 읽지 못했다. 위키백과식 정의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같은 스토리는 분량에 있어서나 상상력의 스케일에 있어서나 쨉이 안 된다. 인도 사람들 정말 훌륭한 유산을 가졌다. 희랍어나 라틴어를 배우고 싶은 게 내 삶의 소망 가운데 하나이지만 인도를 여행하며 듣고 보는 시간 속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의 테두리를 넘지 못한다.


우다이푸르 시티 팰리스로 가는 길은 우버나 툭툭이를 타고 대로를 달려가는 것보단 골목길을 선택하는 게 낫다.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도 있지만 이건 조금 위험하다. 걷는 게 제일 좋다. 무엇보다 재밌다. 구글 맵을 끄면 더 좋다. 구경거리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바라나시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곳곳에 자리 잡은 가트들, 원색의 사리를 걸친 여성과 함께 짐을 고 가는 노새들, 먼지 가득 쌓인 고물차 지붕 위에 잠든 개, 호숫가에 앉아 열심히 통화 중인 중년 남성, 교실 창문 밖으로 여행자를 쳐다보는 매혹적인 눈빛의 아이들, 세밀화를 그리고 있는 무명의 화가...


골목길 순례는 촉박한 여행자에겐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우다이푸르에서는 하루쯤 지도를 접자. 대로보다는 골목길로 들어서 보자. 여행이 어디 뭔가 얻자고 나서는 길인가. 때론 내려놓기 위해서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다이푸르 골목길을 무념, 무심, 무상한 마음으로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마하바라타의 핵심 사건 쿠룩세트라 전투에는 코끼리 부대가 있었다고 하던데...그럼 그 많던 코끼리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돌로 변한 코끼리를 보면서 맥주를 한잔 마신다. 르네 마그리트식 제목을 잡자.


"이것은 코끼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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