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의 소가 되느니 차라리 들소가 되겠다"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Spero

누군가가,

"당신 집에 불이 났다고 칩시다, 그리고 당신은 딱 한 권의 책만 가져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보이는 것, 냄새, 감촉, 맛, 듣는 것, 지성...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프롤로그)


이렇게 시작하는 서문을 나는 1999년 몽골의 푸른 초원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여 일의 긴 실크로드 취재 일정을 마치고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타슈켄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읽기를 마쳤다.


'영혼의 자서전'은 신을 닮고자 했던 인간,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순례 기록이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 하고 똑같았어. 얼굴이 더 검었지만."

"직업이 무엇이었죠?"

"전쟁."

"평화로운 시절에는 무얼 하셨나요?"

"길다란 치보우크 담뱃대를 물고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셨지."

어릴 적에는 신앙이 깊었던지라 나는 또다시 물었다. "교회에는 다니셨어요?"

"아니. 하지만 매달 초하루에 승려를 집으로 데려다가 크레타로 하여금 다시 무기를 들게끔 기도를 시켰단다. 물론 할 일이 없을 때면 할아버지는 조바심을 하셨지. 당신이 스스로 무장을 하시던 날 내가 물었단다. <죽기가 무섭지 않으세요, 아버지?> 하지만 당신은 대답도 않고, 나를 쳐다보지조차 않으셨어."

나이를 다 먹은 후에 나는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여인을 사랑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 끝까지 묻지를 못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죽음을 당해 식구들이 그의 귀중품 상자를 열었을 때 검거나 갈색인 머리 다발을 채워 넣은 방석이 발견된 것을 미루어보아 틀림없이 그는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아버지)


나는 DNA를 믿지 않는다.

그 흔한 MBTI로 사람을 재단하려는 사람들 하고는 가능한 한 말 섞지 않는 편이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고 한 융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운명에 맞선 사람들의 삶에 공감한다.


가령 이런 대목에서 그렇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공포나 고통이 아니었고, 쾌감이나 장난도 아니었으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 크레타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결정적인 시기에 크레타인으로 태어났다는 우연을 통해서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이 세상에는 삶보다도 고귀하고, 행복보다도 감미로운 선인 자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크레타와 터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를 갈구하는 한 인간의 영혼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가?

험난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꿈꿀 때 그는 여전히 자유를 갈망했다.


나는 참된 인간이란 아무리 곤경에 처했어도 신의 앞에서까지도 저항하고, 투쟁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정을 내렸다. (도피하려는 열망)


다음과 문장 앞에서 얼어붙지 않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집에서 기르는 소가 1년 되느니 하루 동안 들소가 되리라. (낙소스)


그가 밟은 순례길을 따라가고 싶다.

먼저 간 자에 대한 믿음이 길을 만든다.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과 마지막을 모든 것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 채로 걸러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이 마음의 연금술은 모든 사람들이 누릴 자격이 있는 위대한 기쁨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리스 순례)

천국에서, 그리고는 마음속에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희귀한 새가 아니다. 행복은 자기 집 마당에서 발견되는 새이다. (이탈리아)

우리들이 죽음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정복할 수가 있다. (크레타)


순례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그 한복판에서 신은 죽었다고 외친 철학자로부터 상처받은 영혼은 위로받는다.


징기스칸의 쇠반지에는 두 단어가 새겨 있었다... Rasti Rousti 힘이 정의다. (...) 내 젊은 시절의 가장 중대하고, 가장 굶주린 순간에 니체는 나에게 견실하고 용맹한 자양분을 주었다. (...) 젊은 시절 내가 항상 바라던 바는 치료가 아니라 상처였기 때문이다. (...) 어떻게 하찮은 누에가 그토록 멋진 비단실을 뱃속에서 뽑아낼 수 있을까? (빠리, 위대한 순교자 니체)


젊은 날의 나 역시 니체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 숨이 멎었던 적이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파멸한 자를, 나는 사랑한다.


자유로운 영혼 카잔차키스, 마침내 그는 신께 자신을 의탁한다.


첫째, 신이여 나는 당신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 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나이까? (에필로그)


내게 이 책은 세 단계에 걸친 영혼의 순례가 동행하고 있다.

1982년 열기 속의 대학 시절 구한

'영혼의 자서전'은 19년 동안 책장에서 잠자고 있었다.

1999년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떠난 실크로드에서 나는 이 책을 뒤늦게 완독 했다.

그리고 24년이 지났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이 찾아오면 습관처럼 페이지를 넘긴다.

빛바랜 페이지마다 '자유로운 영혼'이 숨 쉬고 있다.

이것은 내 영혼의 자서전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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