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앵 소렐, 내 젊은 날의 영혼
적과 흑, 스탕달
스무 살 때는 세상을 생각하고
그 세상에 나아가 어떻게 이름을 빛낼지를 궁리하느라
다른 일은 시시해 보이는 법이다.
(적과 흑 / 스탕달)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 이어 내 젊은 날의 영혼이 오버랩되는 또 한 권의 책을 기억 속에서 꺼낸다.
7~8년은 지났지 싶다.
아들 녀석에게 '적과 흑' 상권을 사준지가.
"읽어봐라. 쥘리앵 소렐이란 하층민 출신 청년이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다 파멸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린 소설이다. 비싼 액정값 때문에 상권만 사준다. 결말이 궁금하면 하권은 니 돈으로 사서 읽어라"
허구한 날 휴대폰 액정만 깨먹는 아들 녀석이 '적과 흑'을 읽으면 뭔가 느낌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인데...
기대가 큰 것이었을까?
책은 아들 녀석의 책꽂이를 장식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10년이 지나도 그럴 것이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적과 흑'을 펼쳤다.
중학교 때 읽었으니 50년이 가까워 오는 세월이다.
내가 이 책을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장학퀴즈 마지막 문제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연말장원을 뽑는 결승전이었는데, 차인표 아나운서의 다음과 같은 멘트가 이어질 때였다.
"나폴레옹이 칼로 하지 못한 일을 펜으로 해내겠다..."
문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부저를 누른 결승전 진출자가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스탕달!"
정답이었다.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아들의 책꽂이에서 꺼낸 '적과 흑' 상권을 다시 읽은 뒤 지체 없이 하권을 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적과 흑'은 신분의 수직상승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다 스러져간,
니체식 표현을 따른다면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고 가다 파멸한" 20대 쥘리앙 소렐의 개인사,
그리고 책의 부제가 말하는 대로 '1830년의 연대기'를 기록한 프랑스 사회사다.
1789 프랑스 대혁명, 그 이후의 프랑스 혁명사를 난 '적과 흑'을 통해 이해했다.
보라, 다음과 같은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청렴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 대는 저 꼴이라니! 그는 속으로 외쳤다. 누가 들으면 세상에 미덕이란 청렴함밖에 없는 줄 알겠구나. 하지만 빈민 구호 사업을 관리하면서부터 자기 재산을 두세 배는 불렸음이 틀림없는 작자가 저렇게 고결한 척 유세를 부리고 있으니! 저 작자는 고아들을 위한 기금까지 빼돌리고 있는 게 분명해. 아무리 비참하다 한들 그 가엾은 아이들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아! 더러운 놈들! 짐승 같은 놈들! 그러고 보면 아버지, 형들, 온 식구들한테 미움받는 나 역시 고아인 셈이지!
(...)
여러분은 행동은 없이 언제까지나 공론만 벌이고 있으렵니까? 50년 후 유럽에는 공화국 대통령들만 있을 뿐, 왕roi이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R.O.I라는 이 세 글자와 한데 묶여서 성직자와 귀족도 사라질 것입니다. 내 눈에는 <다수>라 불리는 더러운 민중에게 굽실거리는 입후보자들의 모습만 선합니다.
나폴레옹주의자인 쥘리앙 소렐은 출세를 위해 야망을 불태운다.
자신의 출생지인 시골 소도읍 베리에르의 레날 시장집 가정교사에서 브장송 신학교 신학생, 그리고 파리 라 몰 후작의 비서로 공간을 확장해 나간다. 야망의 실현을 위해 레날 부인을 유혹하고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출세를 열망하지만 자존심을 지킨다. 자신을 무시하는 모든 자들을 경멸한다. 타협하지 않았고, 그래서 불행했다.
오, 나폴레옹이여! 당신의 시대는 얼마나 멋졌던가! 그때는 출세가 위험한 전투를 무릅쓴 대가로 얻는 보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가엾은 자들을 짓밟아야 출세를 할 수 있으니!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사회의 붕괴는 다가올 필연이었을 테지만 시대는 여전히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나폴레옹의 출현, 황제등극, 유배, 부르봉 왕가의 귀환, 또 다른 혁명이 이어지기까지 프랑스 사회는 수많은 쥘리앙 소렐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쥘리앙을 바라보는 다음과 같은 귀족들의 두려움이 현실화되기까지 말이다.
그는 고상한 혈통에 대한 숭배심이 없어. 우리 귀족을 존중하는 본능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그건 잘못이지. 그런데 한낱 신학생이라면 삶의 쾌락이나 금전의 결핍으로 인해 초조해져 있기 마련인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 경멸을 당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
출세욕 보다 자존심이 더 클 경우, 파멸은 필연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족이 아닌, 흙수저라면 더더욱 그렇다.
쥘리앙 소렐의 20대를 좇아갔던 40 수년 전 나의 10대 때 독후감은 어떠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를 제압하며 의기양양해 있는 쥘리앙의 감회를 그때 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래, 라몰 양이 나를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는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야. 쥘리엥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푸른 눈은 나를 넋 놓고 바라볼 때조차 늘 뭔가를 시험하는 듯 냉정하고 심술궂은 빛을 띠고 있어. 그러니 그 눈길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레날 부인의 눈길과는 너무 다르잖아!
그런 레날 부인의 다음과 같은 밀고장은 결국 쥘리앵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다.
종교와 도덕이 내세우는 신성한 대의에 충실하기 위해 저는 귀하에게 지극히 고통스러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귀하께서 궁금해하시는 그의 소행은 사실 극도로, 제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이나 죄악에 차 있습니다. 가난해서 탐욕에 물들어 있던 그 사람은 완벽한 위선으로 약하고 불행한 여인을 유혹하여 어떤 신분과 처지를 얻고자 했습니다. (...). 양심에 비추어 생각하는 바, 그 사람이 어느 가정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그 집에서 가장 신뢰받는 여인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아무 욕심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소설 문구들처럼 꿀 바른 언변으로 무장한 그 사람의 유일한 목표란 그 집주인과 그 재산을 자기 손안에 넣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뒤에 불행과 지울 수 없는 후회를 남기는 사람입니다.
출세를 위해 시대와 대결했던 쥘리앵 소렐,
그가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레날 부인,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쥘리앙 소렐의 법정 최후 진술은 지금도 압권이다.
배심원 여러분, 부당한 경멸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계층에 속하는 영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보다시피 나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운명에 반항한 일개 농부입니다.
10대 때도 이 대목에서 가슴이 울렁거렸을 텐데, 이번엔 가슴이 저려 오기까지...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맞는 거 같다. 스물셋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쥘리앵 소렐의 이미지가 오롯이 전달 돼오는 것이 아닌가. 다음과 같은 고백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배심원 여러분, 나는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 있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 젊은 나이를 고려하여 동정을 베풀 필요가 있다는 점은 아랑곳없이, 나를 징벌함으로써 나와 같은 계층의 청년들을 징벌하고 그들의 용기를 영원히 꺾어 놓고자 하니까요.
보수왕당파와 위선으로 가득 찬 수도회 성직자들, 그 허영의 시장에서 온갖 추문을 양산해 낸 1830년대 귀족사회와는 격이 다른, 스스로 사형을 주문하는,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단번에 불타올랐다 사라지겠다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뒤를 따르겠다는, 그리하여 구체제를 딛고 새로운 시민 사회를 열겠다는 열망의 표현 아닌가?
쥘리앙 소렐, 내 젊은 날의 영혼,
워털루 전투보다 더 치열한 취업 전선에 있는 아들 녀석도 언젠가는 그를 만나게 되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