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족장이 말했다..."리더란?"

슬픈 열대, 레비스트로스

by Spero

지난 2008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구조주의 석학 레비스트로스의 10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6000140352_20081201.JPG

외신을 통해 관련 기사를 본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책장에 잠들어 있는 그의 '슬픈 열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80년 대 캠퍼스의 필독서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프란츠 파농)이었지, '슬픈 열대' 같은 인류학 보고서는 2순위로 밀려 있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서른 살 되던 해 1937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보낸 기록을 17년 뒤 출판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불후의 명작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했던 1937년부터 1938년까지의 기간 중에 아마존 열대 우림을 포함한 브라질 내륙에 살고 있던 4개의 원주민 부족-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히브족-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을 한줄로 정리해보라고 내게 주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문명과 야만이라구? 천만에!"


2.png


'슬픈 열대'를 다시 읽었다.

나는 디테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책을 떠올리면 내 기억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든다.



"아마존 원주민 족장을 만난 레비스트로스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에게 족장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족장이란, 전쟁이 났을 때 맨 앞에 서는 사람을 말한다."



낡은 종이 냄새 가득한 페이지 한켠에서 나는 내 기억이 만든 문장의 원판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족장의 특권은 무엇이며, 또 그의 의무는 어떠한 것인가?

1560년에 몽테뉴는 그 이전의 몇몇 항해자들을 따라왔던 세 명의 브라질 원주민을 르왕에서 만났다. 그는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족장(그는 왕이라고 말했다)의 특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자신이 족장이었던 그 원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나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문명화된 국가들의 정치철학에는 동일한 일관성이 지속되지 않는다. 매우 놀랄만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남비콰라족의 언어에 있어서 족장을 나타내는 말인 우일리칸데(Uilikande)(<결합시키는 사람> 혹은 <결속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족장의 태도가, 내가 이미 강조하였던 현상을 느끼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족장이란 어떤 필요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집단으로써 집단 그 자체를 형성하려는 집단의 욕구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라고 원주민들이 의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312쪽)



레비스트로스는 아마존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언어와 행동양식을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사회마다 다른 시스템이 존재하고 그 구조가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서유럽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우수하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상식은 편견일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인 셈인데, 난 그의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한다. 문명과 미개를 가르는 서구적 사고의 기준이 과연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리더에 관한 정의만 생각해 보더라도 원주민들의 사고가 서구인들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솔직하고 분명하다.


3.png


뭐니 뭐니 해도 '슬픈 열대'의 백미는 대서양에서 마주하는 해 질 녘 풍경이다.

마치 인류학자가 된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문장을 통해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김민기 / 친구) 이후 가장 강렬한 빛을 체험했다.

문장이 너무도 좋아 읽고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예 30대 레비스트로스가 된 듯 한 줄 한 줄 옮겨 적었다.



이제 태양의 직사광선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늘은 작은 새우, 연어, 아마포, 밀짚, 등의 분홍빛과 노란빛을 나타내 주고 있을 뿐이었고, 그 조용한 색채의 풍요함마저 사라지려는 것같이 느껴졌다. 천공의 풍경이 하양, 파랑, 그리고 초록의 색채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수평선의 몇몇 귀퉁이는 아직도 순간적인 독자적 삶을 누리고 있었다. 왼쪽에서는 신비스럽게 혼합된 초록색들이 장난을 치듯 예기치 못했던 너울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이들 초록색은 점차로 붉게 되어 갔는데, 처음에는 강렬한 빨깡, 다음에는 어두운 빨강, 그 다음에는 보랏빛 빨강, 그리고는 석탄빛처럼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깔깔한 종이 위를 스쳐 가는 목탄 막대기처럼 고르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뒤로는 하늘이 알프스 같은 황록색이었으며, 줄무늬가 뚜렷한 윤곽을 지난 채 불투명하게 남아있었다. 서쪽 하늘에서는 가로진 황금빛 작은 줄무늬들이 아직도 한순간에 빛났으나, 북쪽 하늘에는 거의 어둠이 깔려 있었고,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나 있는 성채는 잿빛 하늘 아래 희끄무레한 볼록꼴들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출은 순간이지만, 일몰은 길다.

리더는 명멸하지만, 리더십은 영원하다.


레비스트로스 (1908~2009)


keyword
팔로워 48
매거진의 이전글쥘리앵 소렐, 내 젊은 날의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