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둘이서 넷플릭스 보다가 하시는 말씀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길래 OTT 끄고 다시 한번 경청했다.
수십 번 들었을 얘기를 요약하면 대충 이런 거다.
전후 50년 대는 늘 배고팠다. 화신백화점(지금의 종각 근처)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 을지로 7가까지 걸어 간 뒤 버스를 탔다. 환승 시스템 없는 시절 두 번 탈 버스 한 번만 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달 출근하면 식구들 먹을 쌀 두어되 값은 절약할 수 있었다. 왕십리에서 을지로 7가라면, 신당동을 거쳐야 하는 40여분 정도 거리다. 지금이야 직선 도로가 쭉쭉 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산동네 골목길 돌고 돌으셨을 테니까 한 시간은 족히 걸리셨을 거다. 늦은 밤 퇴근해 돌아오니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는데 부뚜막에 퉁퉁 불어 터진 국수가 눈에 띄더란다. 아침에 말아 놓고 미처 다 먹지 못하고 간 국수였다. 그걸 후루룩 먹으려 할 때 "왔냐" 하며 시어머니께서 나오시며 말씀하시길, "쌀이 떨어졌단다."
그날 외상으로 쌀 한 되 받아오시며 어머님은 골목길에서 우셨다.
빈곤의 시절, 먹고살기 힘든 세월이었다. 베이비 부머 세대인 나는 절대적 빈곤을 경험하지 못했다. 두루두루 가난했고, 때때로 배 고팠지만, 그 일상의 기억이 비극보다 희극으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그 시절 일상을 책임진 것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일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의 책임감이 집착으로 보이고, 그 집착에 갇힌 부모를 경멸하고, 부모가 누리지 못하는 일상의 행복을 환멸하고, 그러면서 내가 그 비슷하게 닮아간 것이다.
쌀봉지 껴안으시고 골목길 걸어오시던 그날밤, 어머님은 생각하시지 않으셨을까?
삶은 어쩌면 이리도 지긋지긋하게 지속되는가,라고...
즐겁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못한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 아닌가?
구순 노인의 "밥은 먹었나?"하시는 50년 대 식 물음이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송강호의 2천 년 대 식 일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일상 속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은 그가 소시민이든 극악한 범죄자이든을 가리지 않고
선한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밥 먹자"는 말은 쉽게 던지는 것이 아니다. 한 말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