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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Nov 25. 2023

"밥은 먹었나?"하는 그 물음

나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밥 먹을 생각한 사람은 그 '언제'를 구체적으로 콕 집는다.

진짜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은 밥을 챙긴다.

어머님이 그런 분이시다.  

어머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밥은 먹었나?"

대충 아침은 건너뛰고 집을 나서는 내게 늘 같은 질문이시다.

"밥은 먹고 나가나?"

습관처럼

"네~" 답하면,

"두유라도 하나 먹고 나가지..." 하시며 안쓰러운 표정이시다.

뱃살이 가득한 나는 먹는 욕망보다는 덜 먹어야 한다는 걱정이 더 크다.

어머님의 시절은 반대였다.

히스토리, 아니 헐스토리를 들으면 실감 난다.

엊그제 둘이서 넷플릭스 보다가 하시는 말씀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길래 OTT 끄고 다시 한번 경청했다.

수십 번 들었을 얘기를 요약하면 대충 이런 거다.


전후 50년 대는 늘 배고팠다. 화신백화점(지금의 종각 근처)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 을지로 7가까지 걸어 간 뒤 버스를 탔다. 환승 시스템 없는 시절 두 번 탈 버스 한 번만 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달 출근하면 식구들 먹을 쌀 두어되 값은 절약할 수 있었다. 왕십리에서 을지로 7가라면, 신당동을 거쳐야 하는 40여분 정도 거리다. 지금이야 직선 도로가 쭉쭉 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산동네 골목길 돌고 돌으셨을 테니까 한 시간은 족히 걸리셨을 거다. 늦은 밤 퇴근해 돌아오니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는데 부뚜막에 퉁퉁 불어 터진 국수가 눈에 띄더란다. 아침에 말아 놓고 미처 다 먹지 못하고 간 국수였다. 그걸 후루룩 먹으려 할 때 "왔냐" 하며 시어머니께서 나오시며 말씀하시길, "쌀이 떨어졌단다."


그날 외상으로 쌀 한 되 받아오시며 어머님은 골목길에서 우셨다.



빈곤의 시절, 먹고살기 힘든 세월이었다. 베이비 부머 세대인 나는 절대적 빈곤을 경험하지 못했다. 두루두루 가난했고, 때때로 배 고팠지만, 그 일상의 기억이 비극보다 희극으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그 시절 일상을 책임진 것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일 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의 책임감이 집착으로 보이고, 그 집착에 갇힌 부모를 경멸하고, 부모가 누리지 못하는 일상의 행복을 환멸하고, 그러면서 내가 그 비슷하게 닮아간 것이다.

쌀봉지 껴안으시고 골목길 걸어오시던 그날밤, 어머님은 생각하시지 않으셨을까?

삶은 어쩌면 이리도 지긋지긋하게 지속되는가,라고...

즐겁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못한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 아닌가?

구순 노인의 "밥은 먹었나?"하시는 50년 대 식 물음이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송강호의 2천 년 대 식 일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일상 속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은 그가 소시민이든 극악한 범죄자이든을 가리지 않고

선한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밥 먹자"는 말은 쉽게 던지는 것이 아니다. 말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녀오겠습니다"하는 내게 어머님은 또 물으신다.

"밥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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