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는 상대방과 얽혀 싸우면서 관절을 꺾고 조르며 승패를 가르는 운동이다. 수많은 기술과 규칙이 정해져 있고 그에 따른 대응 방법도 여러 가지다. 어떤 기술에서 몸을 어떻게 쓰고 움직이는지 연습하고 훈련한다. 기술로 익힌 동작을 스파링으로 상대방과 맞추며 조율한다. 스파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상대와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든다. 상대의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나와 그의 상황은 달라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과 결과가 우리를 기다린다.
오늘도 버둥버둥 파닥파닥 용을 쓴다. 어느새 상대의 공격에 휩쓸려 버렸다. 그는 이미 내 몸 위로 올라서 틈을 공략하고 강하게 나를 압박한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이리저리 몸을 써보지만 제압당하고 말았다. 상황을 뒤집을 방법이 없다. 매일 비슷한 동작에서 덜미를 잡히고 공격을 당한다. 이렇게 깔리고 눌리는 일을 얼마나 반복했던가? 똑같은 실수를 수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내 움직임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단계를 생략하거나 순서가 뒤바뀌거나 자세가 엉성해서 비슷한 패배를 겪는다. 열심히 뒹굴면서 지는 일은 사람을 좀 머쓱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렇게 처참하게 쓰러지고 눌리는가? 내 눈에는 발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여전히 나는 비집고 덤빌 틈이 많은 애송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싸우고 비슷한 이유로 패배한다. 지고 나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상태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움직임과 대응이 잘못됐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몇 천 번을 지고 나서야 내가 어떻게 몸을 쓰고 움직였던가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내가 주짓수를 시작하면서 그렸던 그림은 이것이 아니었다. 근사하고 멋진 기술로 한방에 상대방을 제압하는 통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원한 것과는 달랐다. 잘못된 방법으로 서툴고 급하게 기술을 시도하다가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지는 일이 많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민첩하지 못했고 요령이 없었다. 스파링에서 기술을 유연하게 쓰려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몸에 배지 않은 기술은 무딘 칼과 같았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타격감을 주지 못하고 쓰린 패배만 남긴다. 기술을 배우고 연습했다고 습득했다고 할 수 없다. 부딪히고 대련하는 순간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다. 몸이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같은 시도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몸이 기억하고 승리로 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곳에서도 내가 원하던 승리로 가는 손쉽고 빠른 길은 없었다.
성공이 주는 쾌감, 그것에 대한 욕망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찾아 헤매던 나는 여기서 수없는 굴욕을 쌓는다. 내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낑낑대고 허둥댄다. 패배 없는 승리는 없다는 걸 매일 몸으로 배운다. 매트 위의 수많은 굴욕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패배가 전부가 아니며 욕망뿐인 허상 대신 진짜가 있는 세계가 나를 강하게 한다. 그래서 또 꺾이고 쓰러지더라도 스파링을 청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없고 내 몸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지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버티다가는 내 몸이 망가진다. 자세를 고쳐 잡고 이 방법 저 방법을 써가며 나만의 쓰임법을 찾아야 한다. 빠르게 습득하고 쉽게 민첩해지는 요행은 없다. 내 위에서 나를 장악하려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뜬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모아 공격을 막는다. 헐떡거리며 몸을 쓰고 땀을 뚝뚝 흘리고 나면 고단한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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