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Feb 06. 2024

하다 보면 괴로울 때가 있어

고통

"아. 개운하다~!"

주짓수 수련을 하고 나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수련을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종일 머릿속을 메우고 분주하게 만들었던 온갖 잡념들이 싹 비워진다. 묵은 먼지를 털어낸 것처럼 지저분한 그림을 빡빡 지워낸 것처럼 깨끗해진다. 꽉 막힌 듯 답답하게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면 수련의 개운함은 한층 더하다. 체증이 뚫리는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배 꼬여버린 문제도 실마리가 보이고 앞이 보이지 않던 막막한 일들도 제 길을 찾는다. 매트 위에 벌떡거리며 내 몸과 상대의 몸을 맞대고 살아 숨 쉬는 나를 느낀다. "방법이 있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 없는 낙관이 며시 비집고 들어와 체념에 빠진 나를 깨운다.


직장에서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와 의견을 맞추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밥벌이의 고단 함이고 비루 함이다. 내 마음과 욕구와 취향을 앞세울수록 우리의 일은 방향을 잃고 엉망이 돼버린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세상에서 나만의 방식만을 고수하며 살 수는 없다. 다시 세우고 없애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일이고 그렇게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낡고 진부한 사고에 갇혀 관성적으로 일을 대하는 사람들, 본질적인 질문도 근본적인 고민도 없이 관행에 기대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다른 방식, 다른 접근, 새로운 도전에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 시작도 하기 전에 딴지부터 거는 사람들, 나와 다른 팀원에 대한 시기로 진창 같은 공기를 만드는 사람들, 납작하게 엎드려 꼼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도전해 볼만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안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어내는 사람들,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 추잡한 싸움판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 그들 틈에서 정작 일은 뒷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 어떻게 해야 목적지를 향해 집중하고 리드할 수 있을까 팀장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으로 그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수많은 질문과 고민 속에서 괴로워했다. 사람에 기대어 이끌어 온 조직은 이제 한계치에 다 달았다. 피로도는 높았지만 효율성은 떨어졌다.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기능을 실현하는 체계가 없는 조직이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린 상황을 뚫고 극복해 나갈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망설였다. 정체되고 고여서 이제는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이 침체된 물길의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이리저리 따져보았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발바닥을 땅에서 떼고 다리 쪽에 좀 더 무게를 실으세요. 그렇게 배꼽 쪽을 강하게 눌러야 못 움직여요. 그래야 제가 꼼짝 못 하죠. 더 세게 더 강하게 누르셔도 괜찮아요." 블루벨트(화이트 벨트를 넘어선 첫 번째 승급자) 수련생과 대련을 하는 중에 니온밸리(상대의 배 위에 무릎을 올리고 상대를 컨트롤하는 기술)를 시도했다. 누른 것도 아니고 안 누른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기술을 시도하는 나를 본 수련생이 한 말이다. 무게를 실으면 상대방이 아플 것 같다는 걱정과 두려움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기술을 썼다. 주짓수를 배우면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보다. 여전히 타인을 괴롭히는 일과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감정들에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주장을 말이나 글로 다투다 보면 감정이 상하고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일하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다툴 수도 있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이유 없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가뿐하게 승리할 수도 있고 엉망진창으로 망가질 수도 있다. 상대의 몸을 종잡을 수 없어서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주짓수를 하다 보면 괴로워진다. 내가 왜 이토록 고되고 힘든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갸우뚱거리게 된다. 하다 보면 괴로워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고 주짓수다.


들은 우리의 결정을 비난할 것이다. 자신들의 빈자리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 없이도 이 조직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부풀려진 자아상을 감추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훼방을 놓으려고 할 것이다. 실속 없이 겉치레만 요란했던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이유와 근거가 없는 짐작이 우리의 결정과 도전을 흩트려 놓는다.


모든 것이 전환되는 시기, 그들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고 우리의 선택이 틀렸을 수도 있다. 확률은 반반이다. 겉보기에 멀쩡했지만 위태로웠던 토대, 썩을 대로 썩어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엉성하게나마 자리를 잡은 조직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위기감과 불안이 없지는 않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바뀐다고 간판을 교체한다고 구호를 외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변화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거대한 강물이 새로운 물길을 찾아 방향을 바꾸려면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며 완성된다.


기다림, 어쩌면 지난하고 긴 여정이 될 그 과정을 천천히 견디어 낼 것이다. 새롭게 기초를 잡고 시작하려는 도전과 시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차근차근 현실로 증명해 낼 것이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대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억측이 현실이 되는 일을 상상하며 스스로 구덩이를 파지는 않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모험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변화도 없는 거라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외부의 작은 질타에 쉽게 나약해져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목표에 마음을 모은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흔들릴 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넘어지지 않겠다. 어떤 일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의 일과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아서 하다 보면 괴롭고 불안하겠지만 배짱이 생길 것이다. 모르고 덤벼도 방법이 있을 것이다.


 출처: pinterest



매거진의 이전글 무게중심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