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feat. 푸르스트의 마들렌

by 달의뒷면

곁에 있던 그들은 늘 그렇게 있을 것만 같았다. 늘이라는 것이 영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늘 있던 그들이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 올 수도 있었다. 울면서 안녕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오가며 치료 중이었던 후배가 며칠째 병가 중이었다. 자꾸만 초조하고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아도 입원 중이라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연락을 해보았지만 카톡 메시지 창도 그대로였다. 얼마 전 조금이라도 먹어보라고 플레인 요구르트를 전해주고 잠깐 얼굴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복직 후에 만난 그녀는 앙상하게 말라있었고 얼굴색도 어두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겁고 눅눅해 보였다. 혹시나 약 먹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닌지 밥은 챙겨 먹는 건지 잔소리만 남기고 헤어졌다. 염려하는 마음만 앞섰지 표현은 투박했다. 며칠 후 경조사 공지란에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본인상... 슬픔보다 충격이 컸고 상실감보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그녀의 아픔과 외로움을 나누고 덜어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존재의 한계를 절감했다. 밥을 먹고 수다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깊은 공허감은 나눌 수 없었다. 나눠지지 않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숨이 가빠질 만큼 울컥했다. 울음이 쏟아지면서 생전 모습이 떠올랐다. 밝고 성실한 후배였다. 막내 출산을 앞둔 겨울 자그마한 화분을 건네며 안부를 물어주는 그녀였다. '이제 운동 시작했어요. 머리도 다시 했어요. 어때요? 괜찮아요?' 체력을 회복하려 운동도 시작하고 헤어스타일도 바꾸며 마음을 았던 그녀였다. 생을 향한 명한 의지만큼 그녀는 망했다.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면서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였다. 어려운 시절을 지내온 것 같지 않게 밝고 유쾌했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능청스럽게 농담을 건네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에 멍하니 있는 날이 이어졌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여기고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자 친구를 만나려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그랗게 구부러진 등과 어깨, 오래 입어 늘어지고 누릿해진 티셔츠, 눌려있는 반백의 뒷머리 '어디 가는 거냐?'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늦지 않을게요' '응... 그래' 늦어지는 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석 옆에 앉아있던 나는 놀란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그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쪽 입구에 나와서 서성이고 있었다.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멀리서 차를 돌려세워 급하게 남자 친구를 보내고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빠... 여기서 뭐해?' '응.... 요즘 네가 만나는 애가 저 사람이냐?' '어........ 응' 그는 멀리서부터 내가 타고 있는 차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멀어져 가는 남자 친구의 차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머물렀던 그의 시선은 딸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신한 인사가 되었다.



눈물이 마른자리에 그들은 어떤 장면으로 기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오래된 사진처럼. 예고 없는 이별은 때 그 순간에 정지된 채로 반복되어 재생되었다. 얼마 전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분의 부고를 들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죽음은 늘 그렇듯이 예고가 없다. 발인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쓸쓸했던 그들의 얼굴을 슬픔을 누르며 안녕을 말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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