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무디어져 간다는 것
feat. 눈물이 나지 않았다.
침울하고 어두운 장례식장... 아버지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 그와 함께 일을 하며 한때 동료였고 선후배였던 사람들... 그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형제와 친인척들... 갑작스러운 죽음을 궁금해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해 뒤에서 숙덕거리는 사람들...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상주가 된 동생 옆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엄마 옆으로 오가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할 수 없었다. 되돌릴 수도 물릴 수도 없었다. 현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슬퍼야 하는데 슬프지 않았다. 눈물이 나야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어떤 배우가 떠올랐다. 역시 현실은 영화 같지 않다. 억지로 지은 표정에 얼굴이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무표정으로 감정을 감추는 방법을 그때 알아낸 것 같다. 장례라는 의식을 치르는데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 뒤에 또 다른 절차들만이 있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이걸 왜 해야 하나? 귀찮고 짜증 나고 피곤하기만 했다. 사람들의 인사와 안부마저도 모두 겉치레처럼 보였다. 죽음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그의 죽음을 알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문상 온 직장 사람들에게 칠칠치 않게 헤프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버지가 정해버린 뜻밖의 결말에 배신감을 느끼다가도 배가 고프고 허리도 아프고 졸음이 왔다. 저것이 딸인데 아직 시집도 안 보내고 아비가 눈이나 감았겠냐며 혀를 차는 손님들 눈을 피해 육개장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먹었다. 아비가 비참하게 죽었어도 음식은 맛있었다. 장례식장에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친척 어르신들을 피해 구석에 앉아 졸았다. 아비가 허망하게 죽었어도 잠깐의 쪽잠은 달콤했다. 슬픔이 먹고 자는 생리적인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사람이 살고 죽는 일과는 상관없이 생은 지속된다는 것을 그때서 알게 되었다. 모두가 그랬다. 몹쓸 짓이라며 욕을 해대던 엄마도 오만상을 하고 있던 동생도 아비가 죽어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할 것은 다했다. 한 사람도 떠나고 나면 끝나고 나면 그뿐 삶은 어떻게든 살아졌다. 살아가졌다.
미래를 약속한 적 없는 남자 친구가 저쪽 구석 벤치에 앉아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보이지만 내 눈엔 그만 보인다. 어디서 구했는지 말끔한 검은색 슈트에 뽀얗고 새하얀 셔츠를 깔끔히 차려입었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채 지쳐있다가 그를 보니 반가웠다. 이곳에 앉아있는 그가 생뚱맞다 싶다가도 와락 달려들어 안기고 싶었다. 여기 왜 온 거냐고 생뚱하게 말해놓고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과 바람은 살랑이는 봄색깔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장례식이고 뭐고 그의 손을 잡고 달아나고 싶었다. 왜 하필 이런 날에... 그렇게 나는 또 떠난 아버지를 원망했다.
원망해 본들 달라질 것이 없었다. 쓸모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망하고 원망하고 계속 원망했다. 오직 그것만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인 것처럼 매달렸다. 그렇게 함으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했다. 고장 나고 뒤틀린 마음이 제멋대로 날뛰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정하고 부인하고 외면하다가 끝내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야 어렴풋이 그의 입장을 이해라도 해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날카롭게 서있던 원망의 날도 시간에 무뎌져 갔다. 제자리걸음 하듯 그날을 서성이며 조여있던 매듭이 서서히 느슨해졌다. 그날에 흘렸을 눈물도 조금씩 불쑥 새어 나왔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슬픔은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들이는 일인 가보다. 슬픔도 녹이 슬고 빛이 바래고 느릿해졌다. 어떤 일은 이유도 없이 벌어지곤 한다고 그날의 일에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게 되었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며 이유를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가 내 아비였으나 끝내는 속내마저는 나눌 수 없는 타자임을 인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사진출처;pinteresr 김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