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밝은 인사 뒤에서

feat. 무서운 생각이 찾아든다.

by 달의뒷면

늘 불안하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품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내일은 볼 수 없을까 봐... 다녀오겠노라고 집을 나선 아이가 오지 않을까 봐... 온다고 해놓고는 집에 도착하지 않는 그가 영영 오지 않을까 봐... 앙탈 좀 그만 부리라는 그의 투정을 내일은 들을 수 없을까 봐... 다녀오라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지만 돌아서 금세 무서워진다.


남편과 나의 주변에는 갑작스러운 질병과 사고로 일찌감치 생을 등진 사람이 많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아버지와 할머니... 사랑하는 이들 주변에 죽음이 서성이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함에 초조해질 때가 있다. 그의 부모와 나의 아비가 그러했듯이 약속도 없이 예고도 없이 작별 없는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정법에 붙들곤 한다.


부지런함과 근면함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의지를 신봉한 사람이 선택한 결말은 모두를 혼란과 실망에 빠트렸다. 과도한 자기애가 자의식으로 끓어 넘쳐 자기 파괴가 되고 만 것일까? 자신 조여 내고야 만 그의 숙명에 목이 멘다. '당신의 행동이 불만이야. 무책임한 당신의 도발이 불만이야. 온갖 점잖은 척 어른스러운 척 다하더니 이게 뭐야? 자기 삶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하더니만 그렇게 가버렸군요. 이렇게 가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꼭 그래야 했던 거야?' 이런 념을 얼마나 더 되풀이해야 할까? 아무 의미 없고 소용없는 짓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결코 죽지 않을 줄 알았으나 죽어버린 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조금 편안해질 수 있었다.


비극적이라고 비참하고 참혹하다고 한다. 그의 어미였고 아내였고 자식이었던 우리도 세간의 평가와 편견에 동조한다. 일일이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에 타협하며 그 모든 일을 비밀로 묶어버렸다. 그를 꺼내어 놓고 하염없이 불러보고 울부짖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목에 무언가 막혀있는 듯한 답답함과 먹함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한 대로 우리는 흩어지고 불화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척하면서 몰래 숨어서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애원한다. 안 그런 척하면서 그것을 무한히 되풀이다. 그가 살아서 곁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한 선택의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이라는 추측과 아마도라는 가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그의 입장에서 라기보다 우리가 그를 보고 느낀 대로의 판단만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의 뜻과 일치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헛다리 집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실행에 옮기기 전에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것도 틀렸다. 결론적인 측면에서 모든 과거는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 된다. 시간마저 거스르려는 헛된 기대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알려고 한들 알 수 없고 이해하려고 한들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난들 나를 모르는데 어찌 그를 알 수 있겠는가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아프면서 안 아픈 척하고 슬프면서 슬프지 않은 척하는 서로를 모르는 가족이었다. 그게 내 가족의 진짜 모습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서 물러서 그를 바라본다. 온전히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좀 더 유로울 수 있다. 본질적 고독과 실존적 고민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 아비라고 생의 무게가 가벼울 리 없을 테니까...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질주할 수 있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죽음을 조금 일찍 조금 다급하게 찾아간 것뿐이라고 도닥여 본다. 남겨진 이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지만 떠난 그에게는 행운의 결말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나도 떠난 그에게 묶여있는 나를 그냥 두지 못하고 공감이나 위안도 바라지 않고 혼자 뱉는 독백처럼 글을 쓴다. 그럼에도 댓글 기능을 열지 못하겠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과거의 그곳에 머물러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다.


<사진출처;pinterest 마크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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