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꿈

feat. 해변의 카프카

by 달의뒷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다. 하루키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재미과 감동을 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노출되었지만 읽을 기회는 만들지 않았다. 남들 다 읽는 책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심이 여기서도 작용했다. 한 권을 단숨에 읽고 나니 그의 작품을 거부했던 영문모를 반항심이 부끄러워졌다. 하루키 특유의 리듬감 있는 문체와 치밀하게 짜인 서사에 깊이 빠다. 읽는 동안도 그렇지만 읽고 난 후에도 수많은 감상이 잔상으로 남아 주변을 떠돈다.


작품에는 무의식에 지배되어 의식의 혼란을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식적으로 행동하려 애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쩔 줄을 모른다. 생시 같은 꿈을 꾸고 꿈같은 현실을 경험한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애매하다. 하루키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내게는 소설 속 상징이라고만 하기에는 실재적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것이 너무도 생생하고 흉측해서 당신 혼자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말을 꺼내면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당신만 아는 꿈으로 묻으려 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서야 할머니가 내게 털어놓은 얘기였다. 그녀는 어떻게든 혼자 꾼 꿈으로, 혼자만 아는 비밀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굳게 다물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떻게든 실현될 일이었다는 듯이 꿈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꿈이 예언한 대로 아버지는 실행했고 현실이 되었다. 정확히 맞아떨어진 그녀의 꿈은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했다. 어제의 꿈을 오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우리는 멍하니 하루를 살았다.


아버지는 42,195km 마라톤 종주를 목표로 매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환하게 웃으며 현관으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 그 이상의 것이 서려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쉼 없이 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일에 그가 그토록 매달리고 집착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짙게 풍겨오는 땀냄새부터 거북스러웠다. 동생이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듯이 그에게 마라톤이 그런 일이 아닐까 가볍게 생각했다. 메달이 늘어갈수록 그의 얼굴이 급격히 야위어 갔다. 마라톤에서 오는 체력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제야 가족들은 그의 취미가 어떤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메달과 기록을 향한 욕구가 강렬해져 갔다. 그에게 마라톤은 반드시 도달해야 할 어떤 성지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정해진 결말을 의식하던 반사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강렬하게 열망하지만 다른 곳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채근하는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짙어가는 그림자를 어떻게든 지우려 발버둥 치는 행동이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제 안의 우물을 거부하고 나약함을 부정한 채 자신을 잠가버렸다.

모든 단계와 원인을 제거해버린 다소 운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면이 있지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내일은 지나온 어제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곳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의 지배를 받는 거대한 유리 공 속 세상이 아닐까? 엉뚱하고 편향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게 일어나고 그가 매듭진 일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런 생각에 기울어지고야 만다. 하루키의 인물들이 말한 것처럼 어떤 일은 그렇게 정해질 운명이 있고 종국에는 정해진 대로 되고야 만다는 종말론적인 생각에 마음을 뺏긴다.


이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다. 사랑해서 같이 살겠다고 맹세해놓고 전생에 원수가 아니었을까 의심을 하고, 열 달을 품었다가 낳은 자식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소리를 지른다. 징글징글하다면서 행복이라고 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화를 낸다. 할머니는 오래 산 것이 죄라고 하면서 약봉지에 숫자를 써가면서 챙겨 드셨다. 어머니는 쓸쓸하게 떠난 아버지를 안쓰러워하면서 그가 기르던 난과 입던 옷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버렸다.


꿈과 현실, 사랑과 미움,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 우리는 모든 불가해하고 복잡한 삶을 돌파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활용한다. 내게 유용하고 유익하기만 하다면야, 그렇게 해서 쉽게 손상되고야 마는 본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야, 버텨 수 있다면야 괜찮은 일이다.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장조 소나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그것이 나를 격려해 주거든.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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