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자의 시선

feat.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by 달의뒷면

새벽녘에 잠시 깨었다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피를 흘리는 젊은 여인이 울부짖으며 거리를 배회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뒤따라 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거리 곳곳에 흘러내린 핏물을 보고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뚜렷하지 않지만 거대하게 무리 진 나무와 사람들도 본 것 같다. 눈을 뜨고도 쉬이 가라앉지 않는 공포에 한참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고 남겨진 연락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꿈이었음에 안도했다.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흉한 꿈이었다고 털어내었다.


새벽 4시... 아버지가 운동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집 밖을 나섰던 시간이다. 아이는 죽음을 떠올리며 전화를 했다. 죽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고 집 밖을 나섰다. 경찰과 구조대원, 친구들과 인근 주민들이 그녀를 찾아 주변을 배회했다. 정말로 죽어서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면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서 뛰어다녔다. 그녀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죽음을 상상하다 만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섰던 것일까? 집 앞에 다급해진 얼굴로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죽지 않고 돌아온 그녀는 구조대원에게 맥박과 체온을 확인받고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로 갔다. 연락을 받은 보호자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 8시... 아버지가 인근 공터에서 발견되어 경찰에게 인계된 시간이다. 아이가 벌인 새벽의 일은 나쁜 신호가 되어 어른들을 불안하게 했다. 죽는 일이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가 될지 모른다는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이는 젊은이가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궁금해했고, 어떤 이는 젊은이가 벌써 죽을 작정부터 한다며 한심해했고, 어떤 이는 젊은이가 죽을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연의 이치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태어나기를 결심하지 않듯이 죽는 일도 결심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니 무언가 어색했다. 죽음과 능동태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가는 존재로서의 고독을 참지 못한 나약함을, 결핍에서 도망가버린 비겁함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래서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고 그 순간을 되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사건이 만들어낸 긴장은 그녀의 내일을 확신할 수 없게 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초조함을 누르며 어른다운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희망을 탐색했고 어떤 이는 담장 너머로 도움을 요청했다. 죽음에 매혹된 그녀에게 생명을 일깨우는 일이 쓸모없다 여겨졌다. 가능성을 잃어버린 신호라고 여기고 주저하고 망설였다. 죽겠다고 선언하며 그것에 큼 다가선 그녀 들여다보는 일이 두려웠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 도망갔다. 죽음을 동경한 그녀를망했다. 그냥 외면해 버리면 그만 일 텐데 신경이 쓰였다. 타자의 고통에 대해 불편해하고 의무감을 느끼며 간섭하는 마음은 오지랖이다. 대상과 분리되지 못하고 의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그래서 꿈을 꾸었다. 이 정도면 강박이다.


가끔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 병원에서 나온 후배를 혼자 두지 않았다면 끝이 달라졌을까? 슬프고 아픈 결말을 바꾸고 싶은 유혹에서 되풀이하는 후회다. 내가 그들 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오만이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게 가능했을까? 미리 알았다면 컴해진 내면의 풍경을 꼼꼼히 냉철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그래도 그 정도는 니야. 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좋은 게 있을 거야.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적당히 숨기고 긍정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낼 수 있었을까? 그래도 살만하다고 거짓말했다면 음의 혹에서 그 야릇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어떤 이는 한 방향의 극단으로 나아가려는 행동에 숨겨진 욕망이 생을 향한 의지라고 해석했다. 설임도 없이 음과 화해시키려 생명을 되살리려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순수하고 무해한 선의였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겁이 났다. 그것은 상대와 상관없는 자기 위안을 위한 선택처럼 보였다. 서투른 선의가 불러올 비참한 결말을 걱정했다. 것도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시선일 뿐이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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