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부르는 아버지 이름

feat. 상처에 붙인 밴드

by 달의뒷면

차가움이 가시지 않은 공기는 봄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봄꽃이 여기저기 활짝 피어 고운 빛깔을 뽐내고 있다.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오는 길가에도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 내게 그의 죽음은 슬프기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죽음으로서 당신의 괴로움을 증명한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심하고 냉정한 가족이 돼버린 우리는 그를 원망했다. 그의 죽음을 묻는 타인의 질문을 피했고 내면에서 떠오르는 질문도 외면했다. 누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질문은 늘어나기만 했고 나는 자주 그날 그의 주변을 서성였다. 꽃이 지천에 피는 이맘때만 되면 아버지가 보고 싶다. 도대체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핀 날에 생동하는 에너지로 공기가 가득 찬 날에 죽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다시금 지난날 떠올린 비슷한 질문을 하며 그를 생각한다. 우리에게 금기어가 된 그의 이름을 조용히 속으로 불러본다.


사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에 처음 도착한 사람은 엄마였고 경찰서에 도착 한 이후에는 남동생이 함께 있었다. 그의 유언이 적힌 종이와 마지막 도구는 남동생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보지 못했다. 무섭고도 생경한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두 사람도 나도 할머니도 아무도 울지 않았다. 장례기간 내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간혹 뜬금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펑펑 쏟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자주 기도를 한다. 그가 살아생전에 만나지 못한 남편과 아이들을 보살펴달라고 기도를 한다. 생에 대한 욕망만큼 그늘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남은 가족들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며칠 전에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설레면서 긴장되는 마음을 다독이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잘하려고 욕심내지 말고 내 방식대로 차근차근 똑바로 걸어가게 해달라고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상하게 용기가 생기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난 주말에 생일이 지난 막내의 법정 전염병 추가 예방접종을 하려 소아과에 들렀다. 주사라는 말에 건물 입구에서부터 겁을 먹은 아이는 의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도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완강하게 버티는 엄마와 아빠에게 이끌려 어렵사리 주사를 맞고 나서야 아이는 시원스레 울음을 터트리며 품에 안겨 투정을 부렸다. 한참을 울고 나서 아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붙여준 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서웠는데도 씩씩하게 주사 맞았어? 어때? 나 용감하지" 벌벌 떨며 무섭다고 소란을 떨던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저 웃음이 났다. 이제 아이에게 날카롭던 주삿바늘의 아픔은 사라지고 팔에는 영광의 밴드만이 남았다.


남몰래 숨겨놓은 아버지라는 상처 자국, 표 나지 않게 감추려고 붙여놓은 밴드가 언젠가는 영광의 징표가 될 수 있을까? 떼놓지 못한 채 눌어붙은 자리를 걷어내고 상처를 당당히 드러내고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늘을 만든 어리석은 사람 숨기고 싶은 사람 아니라 우리의 내일을 밝혀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질 날이 올까? 한 번도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그를 부르고 꺼내어 낼 수 있는 날이 올까? 보고 싶었는데도 꾹 잘 참고 있었다고 투정 부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쓸쓸하게 숨겨진 그를 위해 이번 기일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없는 질문을 하며 서성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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