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하는 편지

feat. 당신의 평화를 빕니다.

by 달의뒷면

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오늘은 아버지가 떠난 날인데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꽤나 오래전 일인데 이제야 편지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어릴 적에도 당신에게 편지를 많이 써 보냈는데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도 서운한 마음이 많았지만 말하지 못했어요. 왜 답장을 해주지 않냐고 답장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 없는 지금에서 되뇌어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리움은 아쉬운 기억마저도 따뜻한 추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가 보네요. 철없고 어리석은 녀석이라서 이렇게 또 답장을 받지 못할 편지를 쓰네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어요. 바람에 흩날리며 날아가는 꽃잎이 당신이 계신 그곳까지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그곳은 어떤 지 궁금해요. 편안하게 잘 지내시길 바라면서도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네요. 당신이 그렇게 황당하게 가버리고 얼마나 많은 날을 혼란스러워했는지 몰라요. 여태도 이러는 것을 보면 영영 벗어날 수가 없는 일인가 봐요. 그래서 당신이 잘 지낸다고 말한다면 심술이 날 것 같아요.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잘못했길래 해소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 속에 잠겨 지내야 하는지 원망스러운 마음 때문이죠. 그만큼 내가 당신을 힘들게 했나요?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요. 왜 나에게라도 얘기하지 않았나요? 왜 조금만 더 참지 못했어요? 마지막 순간에 내 얼굴이 떠올라 망설이지 않았나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늘 강인한 당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내는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였어요. 당신이 만든 그늘 아래서 나는 영원히 사랑스러운 딸아이로 살아갈 줄 알았어요.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허락도 없이 나의 나무를 너무 쉽게 함부로 부서뜨리고 망가뜨려 버렸어요.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해버린 거죠? 누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나요?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나요? 거짓말 같았어요.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괜찮은 척했어요. 그러다 가끔 멍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버려진 아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지요. 당신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일이 자주 힘이 들고 버거웠어요.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 서럽지는 않았겠지 하는 마음에 한없이 초라하고 불쌍해졌어요. 혼자라는 느낌에 항상 둘러싸여 있어요. 당신의 사진을 보다가 울기도 했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어요.


당신이 떠오르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었어요. 결혼과 육아에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일에 몰두하며 도망 다녔어요. 피해 다녔어요. 그런다고 감정에 사로잡혀서 꼼짝 할 수 없는 순간들은 사라지지도 멈추지도 않았어요. 사랑도 어쩔 수 없이 고약하고 건조해지고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누르고 감출 수록 동시에 찾아드는 다양한 감정의 파고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더는 피할 수가 없었어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제라도 당신을 온전히 기억하지 않으면 기약 없이 불어나는 이것들에 잠겨 버릴 것만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설고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감정들을 털어놓고 말 같지 않은 말들과 마음같이 않은 마음들을 덜어내야 했어요. 이제는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슬픔들을 건져서 글을 쓰고 있어요. 고여있던 것들을 토해내고 있어요. 내게 엄청난 사건이었던 일이 그저 있었던 일이 되고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라 세상에 있었던 일이 되게 하고 싶어요. 당신의 죽음이라는 곳에만 닿으면 멈추어 버리는 그 시간을 이제는 더디게라도 흘러가게 하고 싶어요. 혀버린 문 앞에서 소리 지르며 부르짖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요. 당신이 떠난 과거의 일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이곳에서 살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신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숨기지도 않고 에두르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덧붙이고 빼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말하고 싶어요. 사실 어떻게 해야 잘 고백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요. 비록 내게 삶을 쥐어줘 놓고 당신은 내팽개쳐버렸지만 당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나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이 그렇게 죽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당신도 한낮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었음을 말이죠.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복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연민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아직도 나는 당신 죽음이 전부 내 탓인 것만 같은 마음뿐인데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그나마 마음 한편에 넣어두고 꺼내어보아도 견딜만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죽음에 대해 부정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위로해주고 공감해 줄 사람까지 생긴다면야 더 좋겠지만요.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요?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마 못다 한 일들이 많아서 일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충분히 수용받지 못했던 적이 많아서 뿌듯한 기억을 주지 못한 것이 많아서 이별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이 놓고 싶어 하는 손을 내가 붙들고 있는 거예요. 이제 나도 어느덧 당신이 치열하게 살았던 중년의 한때를 지나가고 있어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매일 배우고 있어요. 때로는 사는 일보다 죽는 일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무상함에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당신은 죽었지만 나는 살아있어요. 철부지 같은 내게서 세 명의 생명이 솟아나 살아있으니 신비한 일이지요. 당신이 떠난 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은 것이 꼭 당신 죽음에 빚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글의 끝을 다듬고 있는 즈음에 막내가 낮잠에서 깼어요. 몸을 부대끼며 장난을 치니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네요.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해사한 웃음이에요. 세상 모든 나쁜 기운도 물러설 만큼 청량한 웃음소리... 듣고 계세요?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숨기려 같이 따라 웃었어요.


많이 원망했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혼자 외롭게 떠나게 해서 미안해요. 자식이어도 아빠를 모르고 도와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돼요. 마음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떠나보내고도 태연한 척하며 살아간 저니까 꿋꿋이 버틸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을 거예요. 보고 싶어요. 아빠. 무뚝뚝하고 무심한 당신을 사랑했어요.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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