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집
feat. 어머니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는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버지가 집에 없다. 부스스한 얼굴에 누런 내의 차림으로 안방에서 어슬렁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익숙하던 집이라는 공간이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진다. 낯설고 어색한 것이 집만이 아니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아버지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가 아끼던 난초와 식물들, 그가 늘 손에 들고 있던 등긁이 개, 그가 가장 먼저 반기는 아침 조간신문은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다. 어려운 시절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분연히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었다. 그에게는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남편으로서 부여된 권위와 권력이 있었다. 우리의 왕이었다. 그의 말이 법이고 규칙이자 진리였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의 경제권과 보호권을 전부 가진 통치자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력에 기대어 천방지축인 두 남매를 지도했다.' 아빠한테 물어볼게,,, 아빠가 된다고 하면 할 수 있을 거야,,, 너 그렇게 하면 아빠한테 이를 거야. 혹은 아빠한테 혼난다'
분명히 우리를 보살피고 먹이는 일은 어머니가 하고 있는데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그의 목소리를 빌려서 그의 권위를 이용하여 우리를 양육하려고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자의식이 생겨나면서 어머니의 이런 태도는 반항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분명 어머니의 의도이고 의지인데도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서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렇게 나와 남동생은 어머니의 말을 삐뚤게 듣고 삐딱하게 해석하며 대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는 그런 불만을 일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행여나 그가 알게 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버지 재판관이 내릴 판결을 예상했다. 어머니에게 대든 죄, 어머니 말을 듣지 않은 죄, 그런 일을 아버지에게 이른 죄, 누나답지 못한 죄, 동생답지 못한 죄,,, 선명히 새겨질 죄목들 앞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숭을 장착하고 얌전을 떨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아버지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북한군도 두려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 조금 유난스레 요동치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도모하는 일에 빠져 학생으로서의 일상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그날도 친구와 번개를 앞두고 과감히 학원 수업을 물리치고 달뜬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학원에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간 것도 모르고 늦은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잔뜩 겁먹은 얼굴과 집안의 싸늘한 기운이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고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선 나는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을 꾸짖음이었다. 커다란 손이 순간 훅 날아온 것도 같기도 하다. 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기억이 없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통째로 기억을 날려버린 것 같다. 훌쩍이며 내방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분명 책임을 다하지 않은 철없는 행동이고 응당 치러야 할 대가지만 억울했다.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하다니,,, 나의 감정 회로는 엉망이 되었다. 학원의 연락을 받고 아버지에게 강력한 처분을 요청한 어머니에게 모든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강력한 통치자 아버지에게는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군주였다. 그는 무엇이든 요구하고 지시할 수 있는 통치자였다.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 모든 의무는 그의 지시에 따라 엄마가 했다. 삼 형제의 장남이니 집안의 대소사가 적을 리 없었다. 관혼상제에 속하는 모든 일은 어머니에게 맡겨졌다. 거기에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집안일을 하고 나와 남동생을 보살폈다. 아버지는 가장의 권력을 누리고 어머니는 가장의 권력을 지탱했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먹고 자라는 권력이었다. 어머니는 제사를 앞둔 일주일 전부터 분주하고 바빴다. 그리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어쩌지 못하는 스스로를 들볶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모르는 척했다. 매번 되풀이되는 그 모습이 징글징글했고 구질구질했다. 그래서 그녀의 속사정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고 생채기를 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고 푸닥거리면서 어머니를 지우고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려 했다. 아버지의 무심함이 화가 났지만 상냥한 표정으로 감추었고 어머니의 무기력함이 불쌍했지만 짜증만 냈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의 권력 앞에서 초라하기만 한 어머니를 외면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를 감싸기에는 내가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을 하고 손길을 보태면서 딸에게 전해지는 무의식적인 불편함을 지워냈다.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 어른들은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차려준 상에 올려진 음식과 잡담을 나누고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은 좁은 부엌에서 부대끼며 엇비슷한 짜증을 나누었다. 모두가 편안하지 않은 제삿날을 지내고 나면 어머니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어진 집에서 시어머니와 몇 년을 지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의견과 허락도 개의치 않고 제사와 명절 차례를 모두 없앴다. 아버지가 있음으로 해서 간신히 유지된 질서는 금세 사라졌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권교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어머니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신혼에 접어든 남동생은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사위인 내 남편은 조금 달갑지 않아 했다. 뚜렷하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급작스런 변화에 당황한 듯 보였다.
어머니는 사별 후 스스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제약과 구속을 벗어난 것 같았다. 혼자서 결정하고 누리는 삶이 처음인 것처럼 어리둥절해 보였다. 여성에게 속한 모든 강제적인 보살핌 노동을 거부하고 모르는 척했다. 25년 쯤되는 절대 독재 권력의 기간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대리자였다. 이제 그녀가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