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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ul 16. 2022

내 마음의 함정

자기혐오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고 숲 속에 들어섰다. 귓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매미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여름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며 청량한 소리에 마음이 아진다.


위험은 예고 없는 전화와 예상 못한 만남 속에 있다. 딱딱한 칸막이 뒤에 물러선 타인들에게 말을 걸어본자신을 지켜 줄 사람은 다는 불신의 크기만큼 칸막이를 세운다. 용기를 내보지만 목소리는 작아져만 간다. 차가운 정적이 텅 빈 공간을 채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사는 우리는 서로에게 무심하다. 의식적으로 상대의 비명에 귀를 막고 모르는 척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숙인다. 타인의 복잡한 사연은 궁금하지 않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려 빠져나갈 구실을 찾다. 거창한 호의 뒤에 감춘 적의와 빛 좋은 웃음 뒤에 숨긴 경멸을 구별하지 못한다. 칸막이 속 좁다란 섬에서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채 끊어지기를 선택한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지만 서로 자신의 상황이 더 나쁘다고 느낀다. 허한 웃음소리와 어색한 대화가 이어진다. 좁은 칸막이 속에 갇혀버린 처지와 자꾸만 반복되는 현실을 한탄한다. 사람들은 눅눅하고 적막한 고요 속에 잠들었다. 


악의를 가진 사람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선한 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틀려도 틀린 줄을 모르고 나빠도 나쁜 줄을 모른다. 선을 넘은 행동이 상대의 정체성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의 말이 상대의 자존감을 빼앗는 개소리라는 것을 모른다. 기본적으로 상대의 상황은 안중에 없다. 악당이 뾰족해진 헛소리로 구멍 난 열등감을 채우는 사이 당황하고 쩔쩔매다가 대답할 기회를 놓친다. 그에게 되돌려 주지 못한 무례함은 울분이 되어 되돌아온다. 허기를 채운 악당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곱절로 갚아 싶다. 자기밖에 모르는 무식한 악당에 먹잇감이 되다니, 상대에게 휘말려 상처니, 당당하게 넘기지 못하고 종일 침울하다니, 이런 내가 참으로 멍청하고 한심스럽다.


뾰족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거대한 벽 앞에 서있는 것처럼 막막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상대방 느닷없  말과 태도에 자극을 받다. 쉽게 영향을 받고 휘둘린다. 늘 그런 쪽에 속한다. 심장이 먼저 벌렁거리고 볼이 달아오른다. 갑자기 솟구치는 분노에 압도되어서 해야 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은 백지가 된다. 뾰족한 말을 막아 세울 방패를 찾지 못하고 상처받고 흔들린다. 어떻게 말해야 내 감정을 똑바로 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정처 없이 부유하며 쏟아져버린 감정들에 잠기고 만다. 감정의 조각들을 인식하는 것이 더디기만 한다. 정체된 마음을 삼키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감정이 허상이 아닌 진짜인데 왜 이렇게 인식하고 수용하는 일이 힘든 걸까? 그것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확인되지 않은 감정을 끌어안고 웅크린 채 아파하며 가슴을 친다. 버거우면서도 떨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혼자 고민한다. 같은 장면을 반복하여 떠올리고 같은 말을 되짚어서 더듬는다. 내 마음이 흔들린 이유를 따라가며 그것에 걸맞은 언어를 탐색한다. 상대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사로잡혀서 한참을 서성인다. 순간의 장면과 시간을 끌고 가서 붙들고 고민한다. 불편하고 아픈 감정이 떠오른 이유가 무엇인지 집중한다. 내 감정을 읽지 못해서 의심하고 점검하느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허둥댄다. 뒤늦게 떠오른 언어들은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되려 나를 괴롭힌다. 버린 목소리는 내면에 쌓여서 맺힌다. 일방적인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휩쓸린다. 외부자극에 공벌레처럼 움츠러들기만 하는 내 모습이 바보 같다고 자책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엉성한 평화주의자는 감정을 억압하는 데 능숙하다. 가벼운 자극에도 영향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한심해서 처참해진다. 례함에 맞서지 못하고 끌어안고 끙끙대기만 하는 멍청이라고 자책한다.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해서 매번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상처받지 않으려다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힘들면 꾀도 부리고 요령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요령이 없다. 은 충격에도 너지기 쉬운 취약한 사람이다. 혼자 가슴을 부여잡고는 엉뚱한 사람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헛발질을 다. 이것은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단점이자 장애물이다. 면서도 매번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나에 대한 불신, 혐오, 비난, 연민빠져 허우적댄다. 주변엔 온통 나를 괴롭히는 못된 인간들 뿐이라는 불신에 휩싸인다. 좀 더 높고 탄탄한 벽을 세워서 타인과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고립을 선택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인정받는 것에 집착하다가 넘어진다. 착함과 성실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믿음에서 번하게 미끄러진다. 성실과 배려에 익숙해서 타인에게  대접을 받기도 한. 료를 무시하고 조종하는 사람나쁘다고 온갖 험한 말을 뱉어보아도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약한 사람을 공격한 치졸한 너보다는 내가 낫다 위안해 보지만 상쾌하지 않다.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하려 해도 찝찝한 건 그대로다. 상대방에게 만만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수용하기가 싫어서 악인의 목록을 채워가며 현실을 부정한다.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고 말았는지 떠올리며 스스로를 할퀸다. 나를 생략하고 축소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왜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하는지,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데 모든 이유를 내게서 찾느라 바쁜지, 사람들에게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일을 반복하는지,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나서다가 곤란해지는지 모르겠다. 우연치 않은 반복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힘이 없어 회피를 선택했다.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버거워서 덮어두었다. 쉽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제어되지 않는 욕구를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했다. 상처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 손쉬웠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내게로 숨어서 웅크렸다. 나만의 세계로 은둔했다. 자발적으로 고립하고 외톨이가 되기를 선택했다. 혼자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침묵으로 쌓인 말들을 그러모아 글을 쓰고 글 위에 내려앉은 나를,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한마디에 쪼그라든 나를 바라본다. 이렇게 손쉽게 부서지다니 유리처럼 나약한 자신이 못마땅하고 안타까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너 또 삐졌구나, 왜 이렇게 샘이 많아,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부모님이 내게 종종 했던 말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처벌적이고 엄격한 초자아가 고개를 들고 나를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한다. 참을 수 없이 초라한 나를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화가 난다. 문제에 짓눌려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억누른다. 별 것 아닌 일이라고 툴툴 털어내는 일이 어렵다. 상황에 거리를 두기도 전에 쉽사리 몰입한다. 심각한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쉽다. 흡수해야 할 것과 반사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나를 노출한다. 상황과 사람을 파악하려 눈치를 보며 불안을 모면하려 한다. 무분별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크다.


이렇게 무방비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얇고 나약한 자아를 가지고 세상에 나를 드러내 놓고 내던질 수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보다 자기가 옳고 잘났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건강하게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느낌이 내 안에 깊숙하게 깔려있다. 자기 확신이 없어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불태우는 하루를 살고 있다축소되고 왜곡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복원시키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구축할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고 싶다. 내 감정에 확신을 가지고 자유롭고 편안해지고 싶다. 어떤 배려는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고 어떤 고마움은 되갚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가진 호의가 타인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내가 가진 따뜻함이 타인에게는 헤픈 감정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 나는 주저앉아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것이다. 멈춰있다가 다시 나아갈 것이다. 묶여있다가 다시 풀릴 것이다. 지금의 실패가 삶의 전부는 아니니까, 이런 내 모습이 말끔하지 않고 여전히 난해하지만 채찍질하지 않고 핀잔하지 않고 꾸짖지 않고 부족하고 아쉬운 것 마저 내 모습이라고 수용하면 좋겠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나를 알아채고 수용하는 시간, 철저히 내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그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렇게 불안하고 우울해도 괜찮다고, 인정하고 포용해 주는 안정적인 환경을 경험하고 싶다. 글을 쓰는 일이 불안한 마음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곳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려놓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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