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첫째가 진로 문제로 아빠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 불편하지 않다. 싸움구경하듯이 즐기고 있다.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아들 앞에서 쩔쩔매다가 걱정하는 척 훈계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즐거워한다. 나는 그에 대한 복수심을 안으로 은밀하게 불태웠다. 유치하지만 이런 마음을 품은 날이 많았다. 그의 교만과 아집과 위선이 부서지며 주저앉는 꼴을 보고 싶다고 그를 향한 최대치의 분노를 삼키던 날이 있었다. 복수심에 타오르는 마음을 파괴적인 생각들로 감싸면서 진정시킨 날이 있었다. 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충동적으로 튀어나왔다. 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풀지 못한 감정들이 이것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이가 좀 더 덤비고 그가 좀 더 쩔쩔매는 다음 장면을 기대한다. 좀 더 격렬하게 그를 자극하기를 바란다. 그가 아이와의 갈등으로 괴로웠으면 좋겠다. 내가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것처럼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그는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욕구를 위험한 선택이라고 반대한다. 쓸모없는 일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결말은 뻔하다고 한다. 내 말대로 안 하면 너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내 말대로 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은 네 책임이라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협박을 충고로 포장한다.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어린 날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 억압과 조롱으로 뒤섞인 말들이 식탁 위를 오간다. 온기 가득한 된장과 짭조름한 찜닭을 먹으면서 삐뚤어진 말과 성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팽팽한 긴장감에 밥이 목에 걸리는 것 같다. 모르는 척하며 억지로 밥을 넘긴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네 탓이라는 무책임한 말이 나를 짓누른다. 오늘은 어린이날, 그는 자신에게 순종적인 막내에게는 장난감을 주고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와 둘째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뒤범벅된 관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때에 기쁘고 좋은지 모른다. 자신을 말하지 않는 그는 15년째 낯선 타인이다. 일관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자기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근거 없는 억압과 불안으로 아이들을 윽박지르며 조정한다. 일방적인 지시와 갑작스러운 호통을 피해 아이들은 방문을 걸어 잠근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자세, 내 말대로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방관적 태도,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극단적인 방식이 아이들을 멀어지게 한다. 착한 아이로 길들이려는 잘못된 의도가 아이들을 질리게 한다.
그는 집에서만 풀어놓는 감정 주머니가 있는 것처럼 같다. 분노, 짜증, 신경질, 비아냥, 조소, 비난, 평가, 억압, 협박, 위협, 자기 비난 해소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가족들에게 내던진다. 우리는 늘 예고도 없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감정주머니를 받아 든다. 그에게 우리는 늘 못마땅한 것투성이다. 독기 서린 눈빛과 표정으로 지적하며 소리를 지른다. 오늘도 그는 이 모든 소란이 우리의 잘못인 것처럼, 우리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가족들을 불편하게 해 놓고 외출했다. 그가 흘린 감정들은 나와 아이들에게 흩어져 평온한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는 우리가 못마땅하겠지만 연휴의 안락함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과 없는 행동은 늘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문제를 찾지 못해 안달이 났다. 오늘도 그의 시선은 아이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지적할 것을 찾는다. 가족이니까 경계 없이 함부로 대하는 그의 행동을 언제까지 참아주어야 할까? 불필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더 이상 나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아빠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쓰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불안한 표정으로 아빠를 걱정하는 아이들에게서 어린 날의 나를 본다.
그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어린 날의 내가 부모에게 자주 듣던 말이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하고,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면 한다고, 어린 네 생각은 틀리고 어른의 생각은 맞는 거라고, 당신의 가치와 규범을 강제하며 나에게 욱여넣었던 말들,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지만 나를 여전히 사로잡는 말들, 그것은 내면에 뿌리를 내려서 나를 긴장하고 갈등하게 한다. 과연 그들은 내가 걱정돼서 그렇게 했던 것일까? 본인의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붙잡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맹목적으로 순종했던 아이는 뻔하고 식상한 말에 붙잡힌 순간을 되새기며 의심한다.
서툰 꿈을 끌어안고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세상이 정한 모든 명제에서 탈주하고 위반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언제나 길은 생기기 마련이라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흔들려도 네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네게는 충분히 헤쳐나갈 힘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불안해 떨던 어린 날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