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성인 ADHD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날까지 - [정신독립일기]
1화. 내 블루엔 시작이 없다. 그저 나와 항상 함께 했을 뿐이었다.
분명 나와 같은 아이들도 있다. 마냥 불안해하고 예민한 아이들. 마치 고양이 같은 아이들. 개방정 떨 때는 활기도 넘치고 밝은 흔한 아이의 모습이지만, 환경에 무척 예민해서 누군가에겐 눈엣가시인 아이들. 나의 또렷한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중반부터 시작되고, 그 전은 대개 흐릿하다. 그래도 크고 작은 사건들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렇게 남아있는 기억을 다 뒤지고 뒤져도 나의 블루가 도대체 언제 시작되었는지 꼽을 만한 사건이 없다. 블루는 희미하게나마 항상 내 안을 물들이던 아이였다.
나의 블루에게 시작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뚜렷한 계기가 될 만한 일이라고 꼽을만한 게 없어서이다. 나의 블루가 짙어지게 되는 계기들은 많았지만, 아쉽게도 시작이라고 말할 만한 계기는 없다. 시작이 선명해야 끝도 더 선명하게 마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여러 번 뒤져봤지만 없었다. 물론 애당초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ADHD는 후천적인 것보다 선천적인 거라서, 그리고 ADHD라서 우울과 불안에 유달리 취약한 사람이었음을 안다. 그렇다 해도 나도 일반 사람들처럼 ‘우울에 원인이 있다면? 계기가 있다면?’이란 전제로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는 있는 거니까.
아무튼 지금은 나의 블루가 점점 그린이 되어가다가 올해 들어서 선명한 그린이 되었다. 과장하면 약 20년, 과장 없이 말하면 약 15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블루가 그린이 되기까지 내가 겪었던 일화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나를 다시 단단히 다독여보고 싶다. 이제는 나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내가 기억이 나더라도 좀 더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많이 아팠구나, 우울했구나, 정말 힘들었구나' 등등. 결국 다 내 얘기인데. (웃음)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뭘까? 질문했을 때, 내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게 ‘블루에 대해서 얘기하기’라서.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끝마칠 때쯤엔 글 쓰는 능력이 향상되어있길 바란다. 물론 틈틈이 ADHD에 대한 얘기도 해볼까 한다. 모든 걸 다 얘기하기엔 아직은 소극적이지만, 그래도 적당히 순화해서 말하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젠 선명한 그린이 된 나에게 있어 '블루'란, 이젠 내게 물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중했던 아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