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일기

표현 연습

거부할 권리와 요구할 권리

by 제스민

글쓰기를 안 한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며, 운동을 다니며, 고민을 하며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온 듯하다.


시간이 훅 지나갔다.

점점 더워져서 오늘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동안 리튬을 줄이고, 라믹탈 소용량을 추가로 복용하며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알 수 없는 꿉꿉한 느낌과 무거운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다만 종종 소리나 타인의 말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부모님,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종종 무언가 거슬리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

대화를 피했다.


몸 컨디션은 좋아졌는데

정서적인 컨디션은 예민한 듯했다.


말 못 한 부정적 감정이 태도로 흘러나왔는지

아버지께서는 주치의 선생님께 내가 부쩍 예민해졌다고 얘기하셨다.


나도 왜 예민해지고, 마음이 불편한지 알고 싶어 계속 고민하고 원인을 추측했다.

원인을 찾으면 마음이 편해질지 모르니까.


생각하다 보니

그 원인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함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부하는 것과 요구하는 것.

살아가는데 자연스럽게 드는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 나는 참 어렵다.

목 끝까지는 차오르는데 말로 뱉기까지 누가 목구멍을 막아놓은 것만 같아진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내게 우선순위는 갈등 없이 지내는 것이었다.

참고, 말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고, 무난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안정감을 주었다.

커가면서 상대방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내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만일 하게 되면, 큰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보살핌, 돈, 시간, 친구관계..뭐든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는 것이 내게는 두려움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무의식의 두려움.

그렇게 참고 맞추며 살아왔고, 매 순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화도 안 내고, 남을 잘 배려하는 게 나름 성격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 조울증이 터졌다.

참아서 좋은 줄 알았는데 참아서 병이 되었다.

화가 안 나는 게 아니라

갈등이 두려워서 합리화한 거였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때때로 진짜 배려가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는 방법일 뿐이었음을.


퇴원 후 지나간 과거가 떠올랐다. 특히 일할 때 느꼈던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나를 괴롭게 했다.

당시에는 그들만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피해자고, 그들은 가해자라고.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나의 소통방식에 에러가 있었음을

일할 때마다 느낀 불만과 요구사항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무작정 참기만 하다가 수동적인 공격방식으로 대처했던 것이었다.

침묵, 굳은 표정,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 등..

내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정당한 대처였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니 그저 별난 성격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수동적 공격은 심리치료를 받으며 알게 된 단어이다.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이

퉁명스러운 태도나 굳은 표정, 침묵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꼭 한두 명씩 있는 무례한 사람이 싫고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상대방은 내가 허용한 만큼 무례해진다.

느껴진 무례함, 불편한 감정은 참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방에게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나의 대처방식 또한 서툴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더 이상 그때의 그들이 그렇게 밉지 않아졌다.

이전에는 미워하지 않으려 애써도 안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나의 선을 지키고,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리 치료 선생님께 그런 맘을 다 털어놓았다.

남들은 사춘기에 다 겪고 다듬어졌을 소통방식이

나는 뒤처져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뭐든 처음이면 그렇다.

선생님은 너무 당연하지만, 새롭게 와닿는 말을 해주셨다.

40세에도 처음 하는 공부는 서툰 것처럼,

30대에도 처음 하는 운동은 서툰 것처럼.

나는 이제부터 천천히 하면 된다고, 못 해도 괜찮다고.

안 해봤으니까 서툰 거고, 잘 안 되는 거라고.

그러니 잘 안돼도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응원해 주라고.


그래서 요즘 두려움으로 먹먹해질 때마다 되뇌는 말이 있다.

'나는 거부할 권리가 있고 상대방의 감정은 상대방 몫이다'

'나는 요구할 권리가 있고 상대방은 거절할 권리가 있다'

각자의 권리라는 말이 조금 더 말할 용기를 북돋아준다.


물론 공격적인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될지 몰라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말을 하며 다듬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먼저는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가장 가깝게 지내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나를 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과 상처 주지 않는 것은 별개이다.

최근, 우리는 서로 말 못 하게 받은 상처를 쌓아두었다.

계속 수동적인 공격을 서로 하면서.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처음에는 언성이 높아지고 싸우는 듯했으나

점점 가라앉았고 진정성 있는 말이 오갔다.


대화를 하며 느낀 건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고

상대방을 오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의도로 조심스럽게 말해도

상대방은 공격적이게 느낄 수 있다는 것과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과 행동도

상대방은 부담을 느끼고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하며 서로 다른, 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심리치료 선생님은 가까운 사람,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먼저 표현을 시작해 보라고 하셨다.

정말 나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나의 진심을 전하기 쉬웠다.


이 과정은 앞으로 반복해야 할 훈련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못했지만, 이제는 표현하는 연습.


처음은 서툴러서 투박한 말에 갈등도 있겠지만

나를 아껴주는 관계에서 진정성을 담아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소통방식도 성장하게 되리라 믿는다.


내가 앓은 조울증은

부정의 감정이 고여 고름이 되어 터진 증상이다.

조울증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나의 주된 스트레스는 대인관계다.

나의 대인관계에서 핵심문제는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한 것이었다.


가족들은 조울증 발병을 막아야 된다고, 빨리 다 나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한다.

나에게 조울증 발병을 막는 건

유발된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은 약물로 관리하면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던 소통방식에 변화를 주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지난날 글에 적었던 재활의 시간에

어떤 재활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는데,

소통방식 연습이 재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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