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텅 잘린 나무에서도 꽃은 핀다

잘려나간 자리 위에서 다시 시작된 봄에 대하여

by 신은미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햇살은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툼하게 입고 다니던 계절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져 있었다.

길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디를 봐도 봄이었다.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문득 한 그루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몸통이 뭉텅 잘려나간 채
어딘가 비어 있고,
한때는 생을 다한 듯 보였을 그 자리에서
작은 가지들이 다시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조용히 꽃이 피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 나무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아마도 그 잘린 부분은
썩어가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했던 시간이었을지도.

살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순간.

그 시간을 지나온 나무는
이제야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빛과 그림자가 겹쳐지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햇살은 망설임 없이 내려앉고,
잘려나간 흔적 위로 피어난 꽃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다.

완전하지 않아도,
어딘가 잘려나간 채여도,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 흔적 위에서
더 단단한 계절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그날의 봄은
화려하게 피어난 다른 꽃들보다,
그 나무 한 그루로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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