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는 아직 내 안에 있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4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10대 소녀가 자리하고 있다.
“엄마 피곤하니까 오늘은 울 딸이 밥 하는 날~”
전날 저녁, 중2 딸이 삼겹살에 부추구이와 볶음김치를 해주었다.
기특한 녀석. 나보다 더 잘 구웠다. 고기의 육즙이 살아 있고 부추도 김치도 알맞게 익었다.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 이따다끼마스~”
딸과 나는 취미가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다.
둘 다 간단한 일본어 회화 정도는 할 줄 안다.
“도우모~”
딸도 화답했다.
우리는 친구 같은 모녀다.
물론 중2 사춘기가 가끔 무섭게 찾아올 때도 있지만 말이다.
문득 내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딸과 같은 나이 때 H.O.T.를 따라다녔다.
공연을 보겠다고 몇 시간씩 대기하던 기억이 난다. 힘든 줄도 몰랐다.
브로마이드며 사진이며, 용돈이 생기는 대로 사들였다.
나의 엄마는 그런 나를 탐탁지 않아 했다.
사실 나는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다.
지지해 주는 사람도, 그걸 이해해 주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의 코스프레 활동을 응원해 준다.
녀석이 부럽다. 나도 언젠가 딸과 함께 코스프레 행사장에 가고 말리라.
또 딸의 취미이자 장래의 꿈은 성우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성우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말해주지, 흠.
무튼 내 딸은 매일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배역을 맡고 성우 연기 연습을 한다.
나는 그 모습을 응원한다.
나 같은 엄마를 둔 딸이 조금은 부럽다.
내 안에는 아직도 10대 소녀가 산다.
H.O.T.를 좋아해 공연을 보러 가려고 몇 시간을 기다리던 소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성우를 꿈꾸던 소녀.
가수가 되고 싶었고, 뮤지컬 배우도 되고 싶었고, 라디오 DJ도 되고 싶었던 소녀.
그리고 어제, 나는 그 소녀를 다시 만났다.
딸과 함께 애니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소녀 하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