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주관적인, 오직 나만의 기억들
그 사건이 지나간 뒤의 기억은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긴 고통과 시간이 흘러간 뒤 나는 어느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왕따를 당하던 아이’에서 ‘왕따를 시키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욕을 하고,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그것도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가 되어 있었을까.
아마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걸 어린 나름대로 배워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고, 다시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같이 놀고 싶다고,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그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왕따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이나, 같은 상처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뒤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일상은 어린아이가 버티기엔 너무 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억이 조각조각 끊기고, 드문드문 희미하다.
그 와중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언니.
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댄스 동아리를 꾸준히 했다. 그 시절이 아마도 S.E.S, H.O.T, g.o.d, Fly to the Sky, 샤크라, 핑클 같은 그룹들이 교실과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때였을 거다.
언니는 플라이투 더스카이를 좋아했다. 양갈래 앞머리에 힙합풍 청바지, 길게 늘어뜨린 혁대까지. 방에서 춤을 추던 언니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그때 언니의 꿈은 ‘가수’였을 것이다.
그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은 끝나갔다.
중학생이 된 나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섰다.
그 시절엔 ‘1 지망, 2 지망’을 써서 뺑뺑이를 돌려 학교가 정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집 근처 학교로 가게 됐다.
내 경우엔 집에서 걸어서 5분.
그곳은 여중, 여고, 남고가 한 재단 안에 모여 있는, 지역에서 제법 잘 나가던 학교였다. 운동장이 무려 세 개나 있었고, 각자 커다란 체육관도 딸려 있었다. 교문도 세 개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새 교복을 입고, 새로운 계절의 공기를 마시며 나는 다시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내 안엔 어린 나이에 겪은 사건들이 작은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