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기억의 내 역사서

: 아주 주관적인, 오직 나만의 기억들

by 나야

그 해, 다음 봄

내가 다닌 첫 학교는 1학년까지만 국민학교였다. 2학년부터는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뀐 건데, 나한텐 어쩐지 시대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늘 언니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내가 1학년일 때 언니는 3학년. 근데 희한하게도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기억은 잘 안 난다. 마치 블러 처리된 사진처럼 흐릿하다.

확실히 또렷해지는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반에서 인기 많던 애였다. 근데… 바로 그때부터 내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됐다.

어디에나 있는 그놈의 짱들.
지금 말로 하면 ‘일진’ 정도? 어쨌든 반에서 힘 좀 쓰던 애들이 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애였다는 것. 거짓말도 못 하고, 감정 숨기는 것도 못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시선이 흔들렸는데, 그걸 짱 놈이 눈치챘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나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한테 잘해줬다. 먹을 거 챙겨주고, 등하교도 같이 하고, ‘찐친’인 척했다. 난 그게 친절인 줄 알았다. 근데 사실은 덫이었다.

“너, 그 아이 좋아하지? 다 알아.”
짱이 그렇게 웃으며 속삭였을 때, 내 얼굴은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거였다.

며칠 뒤, 그는 내게 말했다.
“곧 축구 시합 있잖아? 그날 끝나고 고백하면 딱 좋겠다. 아, 내가 떠보니까 걔도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더라.”

나는 부끄럽다고, 못 하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는 편지를 쓰라고 부추겼다. 결국 나는 넘어갔다.

그리고 대망의 축구 시합날.
내가 좋아하던 그 아이는 멋지게 골을 넣고 팀은 승리했다. 나는 그 열기 속에서 편지를 건넸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내일 학교에 갈 용기도 없었다.

다음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교실은 유난히 조용했다. 폭풍 전야 같았다. 그리고 점심시간.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아이의 얼굴엔 복잡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미안함, 당황, 짜증… 뭐 그런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짱이 내 편지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고백 편지를.

순식간에 교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창피함, 슬픔, 아픔,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다.

짱은 큰 소리로 선언했다.
“얘 왕따야. 얘랑 말하거나 같이 놀면 다 같이 왕따 시킬 거니까 알아서 해!”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 왕따가 되었다.

왜 그땐 그렇게 그 애들이 무서웠을까.
왜 선생님, 부모님, 심지어 언니한테조차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복한 척’ 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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