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나는

우주론 #2

by Day One

나는 우주의 시작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쌓일수록, 시작을 찾는 과정은 점점 더 미로처럼 느껴진다. 오늘 이 글은 이전까지의 사유 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다음 질문을 던지는 시도다. 빅뱅이 신화이고 반복하는 우주가 진실이라면, 나라는 개인은 이 영원의 회전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한 번의 흔들림으로 끝나는 세계가 아니라 무수한 반복과 리셋, 진동 속에 살아 있는 작은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반복의 우주, 경계 없는 시간

우주가 숨 쉬듯 팽창했다가, 어느 임계점에서 다시 수축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여 폭발이 일어난다. 그 과정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생각을 처음 들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 순환의 각 사이클마다 조금씩 바뀌는 역사, 사소한 사건의 누적, 별 하나의 탄생과 소멸까지도 이전 반복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 내가 지키는 이 하루, 사랑하는 이 순간 또한 흩어지고 다시 이어질까. 우주는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복잡해지고 해석이 어려워진다.

반복 속에서 현재의 우주는 과거의 흔적에 둘러싸여 있다.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 별빛이 품은 화학적 패턴, 은하의 형태까지도 반복의 여운을 걸치고 살아간다. 마치 역사가 기록된 책이 아니라 끝없이 편집되고 지워지는 필름 한 조각 같은 느낌이다.다.


호킹 복사와 완전한 리셋

블랙홀은 반복하는 우주의 리듬을 잠시 깬다. 우주와 시간의 끝에 자리 잡은 이 검은 심연, 빛도 빠져나올 수 없던 그곳에서 스티븐 호킹은 복사하는 블랙홀을 상상했다. 블랙홀에 삼켜진 입자가 미세한 텀이 지나 우주로 퍼져나가는 과정, 이 호킹 복사가 우주의 종말에 조회수를 올린다. 전통적 블랙홀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호킹 복사는 끝까지 붙잡고 있던 정보를 미세하게나마 흩뿌린다. 호킹 복사는 우주를 서서히, 아주 느리게 씻어낸다. 블랙홀의 마지막 질량이 사라질 때, 남는 것은 너무 희박해서 실제로 마주할 수 없는 냉기뿐이다. 나는 그 순간을 생각한다. 온갖 정보와 에너지의 혼합, 기억과 사랑과 후회의 잔여 흔적이 광자나 중성미자로 쪼개져 어딘가를 떠돌다 사라져간다. 만약 이 정보가 완전히 지워진다면, 나는 한 번만 ‘나’로 존재하고 이후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겨우 남는 건, 완전히 증발한 뒤 새롭게 편성되는 우주의 잔상, 한 번의 리셋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반면 어떤 이론가들은 모든 기억이 해독 불가능한 형태로 우주 어딘가 남아있다고 말한다. 모든 선택의 흔적이 끈 이론의 고요한 진동으로, 은하 가장자리의 입자로,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우주들의 한 조각으로 남는다.


정보의 미로

내가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든 흔적이 깔끔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해독할 수 없을 뿐 내 행동과 조건이 우주 어딘가에 영원히 남는 것일까. 호킹 복사가 보여 주는 패러독스는 끝없이 복잡하다. 정보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태워 없앤 종이의 정보도 이론적으로는 모두 복원할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의 내부를 조사할 순 없어, 증발 후 추론만 남는다. 과거의 내가 완전히 리셋된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이전의 기억을 전혀 가질 수 없으니. 펜로즈의 등각 순환 우주론은 이 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반복을 상상한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고, 질량 없는 입자로 변환된 끝에서 완벽하게 깨끗해진 상태로 우주가 다시 리셋된다. 첫 시작이 아니라, 시간의 끝에서 온전히 정보가 사라진 순간 새로운 우주가 시작된다.


흔적 없는 자유 혹은 불멸의 기록

여기에 한 가지 큰 질문이 붙는다. 반복 속 자유란 무엇인가. 정보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전의 나는 정말 한 번만 존재하고 사라지는가. 혹은 작은 변화 한 번, 미세한 선택 하나가 사실은 다음 반복의 우주에 영향을 주는가. 내가 쌓아 올리는 오늘의 의미가 흔적 없이 흩어지거나 혹은 영벌의 바다에 누적되어 결국 우주 전체의 리듬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상상. 이 둘은 전혀 다른 자유를 만든다. 완전한 리셋은 이 순간에만 나를 집중하게 하고, 흔적이 남는 반복은 과거의 나를 찾아 내 손에 쥐어준다. 호킹 복사 이후 우주는 열적 죽음의 뒤안길에서 다시 질량 없는 입자가 되어 흔들린다. 펜로즈의 CCC 모델에서는 그 순간 다음 우주의 시발점이 촉발된다. 하지만 정보 보존론의 최전선에서는, 완전히 리셋되는 순간에도 이전 선택의 미세한 흔적이 다음 우주의 패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반복의 심연에서 내 삶의 좌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반복하는 우주는 거대 물리학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내 삶도 반복되고, 감정도 리셋된다. 계속되는 하루와 밤, 익숙해지는 고민과 두려움,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 우주와 닮았다. 오늘 내가 한 선택,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지나온 시간을 리셋하는 무수한 미로가 펼쳐진다. 순간의 의미에 집중할수록 우주의 반복적인 사고방식이 내 삶에도 진짜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인가 아니면 단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무수한 반복 중 하나인가. 무한 반복의 바다에서, 나는 내 목소리가 이어지길 바란다. 내가 남긴 작은 정보, 기억, 순간, 한 점의 떨림이 우주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면, 어쩌면 내가 흘려 보낸 말 한 줄과 사랑한 사람의 이름이 다음 우주의 리듬을 한 번쯤 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반복의 끝에서 다시 시작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반복하는 우주, 흔들림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나라는 정보가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매 순간의 선택이 우주적 리듬에서 진동한다 해도 내가 가진 자유는 언제나 현재에 있다. 반복은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만들고 세상을 새롭게 쓸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시작이 없는 우주에서, 나는 언제든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 우주는 반복하고, 의미는 흔적과 리셋 사이를 오간다. 나는 오늘도 자신만의 의미로 새로운 반복을 시작한다. 끝은 없고 시작도 없다. 반복만이 흐른다. 그 안에서 나는 한 점의 떨림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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