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바둑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4)

by Day One

시야를 넓히는 순간, 판이 보인다

바둑을 배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한 곳에서 눈을 떼는 것'이었다. 상대가 내 돌을 치러 오면 거기만 보인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 같고, 이 돌만 살리면 판이 풀릴 것 같다. 근데 그렇게 부분전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판 전체를 잃고 있다. 복기를 하면 명확하다. 내가 진 판들은 대부분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을 때였다.

바둑은 결국 집싸움이다. 한 곳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마지막에 내 영역이 몇 집이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초보는 이걸 모른다. 몇 점짜리 부분전에 목숨 걸다가 수십 집 짜리 큰 곳을 놓친다. 나도 그랬다. 한 가지 일에 매몰되면 다른 건 안 보였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다 풀릴 것 같아서 거기에만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었다.


대국관

바둑에는 '대국관(大局觀)'이라는 개념이 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시야를 말한다. 하수는 눈앞의 돌 몇 개에 집중하지만, 상수는 판 전체의 흐름을 본다. 지금 이 싸움이 전체 집 계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서 이기더라도 저기서 지면 의미가 없는 건 아닌지를 끊임없이 계산한다.

바둑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제일 많이 한 말이 "판 전체를 봐라"였다.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다. 지금 이 돌이 죽느냐 사느냐가 급한데 무슨 판 전체를.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이 싸움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여기서 지면 다 잃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싸움을 져도 저쪽에서 더 큰걸 얻으면 이긴다.

중요한 건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한 곳에서 눈을 떼고, 판 전체를 둘러보는 것. 그러면 보인다. 아, 여기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구나. 진짜 중요한 건 저기였구나.



부분전의 매몰

내가 제일 많이 빠지는 함정이 부분전이다. 한 곳에서 상대와 부딪히면 거기서 이기고 싶어진다. 감정이 개입한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될 것 같고, 이 돌만큼은 꼭 살려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옆에 더 큰 곳이 있는데도 안 보인다. 내 집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모른다. 그냥 이 싸움에만 집중한다.

바둑 격언에 "부분전에서 이기고 판에서 진다"는 말이 있다. 한 곳에서 상대를 이기는 데 성공했는데 막상 집을 세어보면 지는 경우다. 몇 점짜리 승리에 집착하다가 수십 집을 놓친 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목표, 하나의 관계, 하나의 문제에만 매몰되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나도 그랬다. 한 가지 일이 안 풀리면 거기에만 시선이 고정됐다. 다른 기회들이 있었는데도 안 보였다. 이것만 해결하면 모든 게 풀릴 것 같았다.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일은 사실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니었고, 내가 놓친 다른 것들이 훨씬 중요했다.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거다.


이창호 9단처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이창호 9단이다. 이창호 9단의 바둑이 강했던 이유는 시야가 넓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분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와도 "여기서 싸워봤자 손해"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손을 뺐다. 그리고 더 큰 곳으로 갔다. 한 곳에서 몇 점 얻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집을 효율적으로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바둑은 지루해 보였다. 화려한 싸움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자기 집을 지었다. 근데 그게 제일 강했다. 부분전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전체 집 계산만 했다. 남들이 몇 점짜리 싸움에 목숨 걸 때 그는 수십 집 짜리 큰 곳을 먹었다. 시야의 차이였다.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눈앞의 한 가지 문제에 시야가 고정되면 길을 잃는다. 이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이것만 해결하면 모든 게 풀릴 것 같다. 근데 시야를 넓혀보면 보인다. 다른 길도 있고, 다른 기회도 있고, 이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도.


시야를 넓히는 연습

그럼 어떻게 시야를 넓힐까? 바둑에서 배운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멈추고, 판 전체를 둘러보는 거다.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이 한 곳을 잠깐 잊고, 다른 곳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사실 선택지는 많다는 걸 확인한다.

바둑에서는 이걸 '형세 판단'이라고 한다. 지금 이 판에서 내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어디가 큰 곳인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거다. 부분전에 빠지기 전에 한 번, 부분전 중간에 한 번, 싸움이 끝나고 또 한 번. 계속 판 전체를 확인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는다.

인생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럴 때 멈추고 물어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전부인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 연구가 안 풀릴 때, 관계가 꼬였을 때, 미래가 막막할 때. 그 한 가지에 시선이 고정되면 답이 안 보인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다른 선택지들을 둘러봐야 한다.


결국 전체를 보는 자가 이긴다

바둑은 결국 집싸움이다. 부분전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판 전체에서 내 영역이 더 넓으면 이긴다. 그러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 곳에 매몰되지 말고, 판 전체를 봐야 한다. 지금 보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도 아직 잘 못 한다. 여전히 한 가지에 집착할 때가 많다. 그래도 바둑판 앞에 앉으면 생각한다. 지금 내 시야는 얼마나 넓은가. 이 싸움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판 전체를 보면 뭐가 보이는가. 그 질문만 잊지 않으면, 적어도 길을 완전히 잃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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