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인가, 미련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3)

by Day One

요즘 계속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계속 밀고 나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방향을 틀었어야 했던 걸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부터 많이 겼었다. 예를 들면 수학문제를 풀 때 아니다 싶으면 푸는 설계를 빠르게 바꾸던가 아니면 이제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우직하게 식 전개를 해나가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지였다.

요즘은 길을 걷다가도, 잠들기 전에도 이 질문이 튀어나온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과 빠른 포기가 지능이라는 말 사이에서, 나는 매일 갈팡질팡한다. 주변의 소음으로는 밀고 나가면 "이미 늦었는데 왜 미련을 못 버리냐"는 목소리가 들리고, 방향을 바꾸려 하면 "여기까지 왔는데 왜 포기하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선택의 무게는 매일 무거워진다

20대 초반에는 선택이 가벼웠다. 동아리 들어가기, 전공 바꾸기, 알바 그만두기. 잘못된 것 같으면 다음 학기에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선택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걸.

석사과정에 들어온 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창업도 준비 중이다. 연구주제는 매번 바뀌고 실험 방법도 바뀌고 뭔가 요즘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게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학위를 따느냐 마느냐, 이 연구 주제를 붙잡고 있느냐 마느냐, 지금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느냐 마느냐. 이제는 한 번의 선택이 1년, 아니 3~5년의 시간을 통째로 저당 잡는다. 선택은 더 이상 깃털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가 되어 내 어깨를 누른다. 특히 석사 과정에 들어온 후, 연구와 창업이라는 두 개의 산을 동시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기묘한 상실감에 빠졌다. 예전에는 내가 꽤 우직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연구 주제는 수시로 바뀌고, 실험 방법은 매번 엎어진다. 어제는 이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오늘 데이터를 뽑아보니 쓰레기다. 그러면 또다시 다른 길을 찾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그릿(Grit)인가, 아니면 매몰 비용인가

우리는 ‘끈기’를 최고의 미덕으로 배웠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끝까지 버티는 힘, 이른바 ‘그릿(Grit)’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20대 후반의 청춘에게 끈기는 때로 독이 된다.

가장 큰 혼란은 내가 지금 발휘하는 게 ‘끈기’인지, 아니면 이미 쏟아부은 시간이 아까워 놓지 못하는 ‘미련’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부른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명백히 손해인 길을 계속 걷는 오류이다.

세스 고딘은 『더 딥』에서 이 차이를 명확히 했다.
‘더 딥(The Dip)’은 성공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통스러운 정체기다. 이때는 죽어도 버텨야 한다. 반면 ‘컬데삭(Cul-de-sac)’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막다른 길이다. 이때는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는 게 지능이다.

문제는 우리가 실험실 안에서, 혹은 창업 전선에서 이 둘을 구분할 명확한 시약(Reagent)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직함에 대한 오해: 직선인가, 방향인가

내가 느끼는 “우직함의 상실”은 어쩌면 우직함에 대한 잘못된 정의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직함을 ‘직선’으로 이해한다. 한 번 정한 길을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가는 것. 하지만 실제 세상은, 특히 과학과 비즈니스의 세계는 절대 직선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입자의 궤적을 추적할 때도 마찬가지다. 입자는 수많은 충돌을 겪으며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입자의 ‘순간 방향’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Flux)’이다.

연구 주제가 바뀌고 실험 방법이 바뀌는 것은 내가 약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 데이터가 나에게 “이 길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아무런 데이터도 나오지 않는데 고집스럽게 같은 자리를 파고 있는 ‘맹목적인 우직함’이다. 그것은 끈기가 아니라 태만이다. 변화하는 환경과 데이터에 맞춰 경로를 수정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전략적인 유연함이다.


인생에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 사고가 나거나 길이 막히면 즉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말하며 다른 길을 안내한다. 그때 내비를 보고 “너 왜 우직하지 못하게 자꾸 길을 바꾸냐”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본질이지 처음 정한 길을 고수하는 게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직함의 정의를 새로 쓰자.
우직함이란 ‘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로를 수정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내 궤적이 지그재그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목적지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끈기와 미련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시간조차, 결국 가장 단단한 ‘나’를 만드는 제련의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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