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5)
역사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 말이다. 그들은 모두 큰일을 하기 전까지 살아있었다는 것.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간과한다.
강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공룡은 강했지만 멸종했고, 바퀴벌레는 약하지만 살아남았다. 역사는 늘 생존자의 편이었다.
삼국지를 읽어보면 사마의라는 인물이 나온다. 천하의 제갈량과 맞붙은 인물이지만, 그의 전략은 화려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심해 보일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공격해 오면 사마의는 어떻게 했을까? 성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제갈량이 여자 옷을 보내며 비겁하다고 조롱해도, 사마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이 "우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싸우지 않습니까?"라고 항의해도 무시했다. 주변에서는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버티기만 하는 지휘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븅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알고 있었다. 촉나라는 국력이 약해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제갈량이 과로로 곧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실제로 촉의 사신이 술자리에서 "승상께서 먹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흘리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오래 못 버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계속 버텼다. 결국 제갈량은 죽었고, 사마의는 살아남았다. 그의 손자 사마염은 결국 천하를 통일했다.
사마의는 젊은 시절에도 철저히 자신을 낮췄다. 조조가 그를 의심하자 하급 관리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축을 돌보는 일까지 했다. 자존심 상했을까? 당연히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그렇게 조조의 의심을 풀고 조비의 신임을 얻었다.
사마의의 인생 전략은 명확했다. "움직일 때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일 때는 단번에 끝낸다". 실제로 그의 쿠데타는 단 3000명의 병력으로 순식간에 성공했다. 평소에는 바보처럼 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냉혹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한나라를 세운 장군 한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비슷하다. 어느 날 동네 건달이 그에게 말했다. "칼을 차고 다니는 걸 보니 용감한 척하는 것 같은데,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봐. 못 기어가면 칼로 나를 찔러봐."
모욕이었다. 그것도 공개적인 망신이었다. 칼을 차고 다니던 청년에게 가랑이 밑을 기어가라니. 지금으로 치면 SNS에 실시간으로 퍼질 만한 수치였다. 하지만 한신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냥 기어갔다.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이다. "저 놈 겁쟁이네."
하지만 한신은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건달 하나 찔러 죽여봤자 자기 인생만 끝난다는 것을. 그는 더 큰 꿈이 있었다. 그래서 참았다. 나중에 그는 한나라 최고의 장군이 되었고, 과거에 자신을 조롱했던 그 건달을 찾아가 오히려 관직을 주었다고 한다.
이게 바로 '과하지욕(胯下之辱)'이다. 가랑이 밑의 치욕.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수치를 당했다는 뜻이 아니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일시적인 모욕을 참았다는 뜻이다. 그는 진짜 븅신이 아니었다. 븅신인 척한 것이다.
춘추시대 월왕 구천의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그는 오왕 부차의 포로가 되었다. 왕이 포로가 된 것이다. 부차는 구천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모욕을 주었다.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게 하고, 심지어 자신이 탈 말의 안장 역할을 하게 했다.
왕이었던 사람이 적국의 왕 밑에서 말 돌보는 노예 생활을 2년 넘게 했다. 상상이 되는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원수의 말똥을 치우고, 원수가 말 타는 것을 도와주는 삶. 하지만 구천은 참았다. 철저히 복종하는 척했다. 부차가 "이제 진짜 순종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때까지.
결국 구천은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그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거친 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쓸개를 혀로 맛보며(嘗膽) 복수를 다짐했다. 20년 후, 그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는 자살했다.
이게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진짜 의미다. 지금 당장의 자존심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나중을 위해 치욕을 삼킨다는 것. 구천이 포로 생활 2년 차에 "나는 왕이었다!"라고 외치며 반항했다면? 그 자리에서 죽고 끝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게 될 때가 있다. 상사의 논리적 오류가 보이고, 동료의 비효율적인 제안에 속이 뒤집힐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할 말 다 하고 살면 좋겠지. 정의롭고 멋있어 보이니까.
"부장님,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과장님, 그건 말도 안 되는 결정입니다."
당신은 논리적이고 정확한 이유를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정작 중요한 전투에서 쓸 탄약이 바닥난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도발에 매번 응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어느 한 번의 전투에서 졌을 것이고,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아, 네 그렇게 하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입에서 나올 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븅신처럼 사는 게 아니라, 똑똑하게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이다. 한신이 가랑이 밑을 기어간 것처럼, 구천이 말똥을 치운 것처럼. 그런 척하는 거다. 진짜 븅신이 아니라 븅신인 '척'하는 거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늘 거북이의 성실함에만 주목했다. "느려도 꾸준하면 이긴다." 하지만 다시 보면 거북이는 진짜 천재 전략가였다.
토끼가 빠른 것을 자랑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때, 거북이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했다. 토끼가 "나 진짜 빠른데?"라고 허세를 부릴 때, 거북이는 "그렇구나"하며 묵묵히 걸었다. 싸울 필요 없는 싸움은 피하고, 자기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의 룰 안에서만 경쟁한 것이다.
토끼는 중간에 모든 걸 보여줬다. 자신의 최고 속도를, 자신의 자만심을. 반면 거북이는 끝까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결과는 우리 모두 알듯이 거북이가 승리한다.
사마의도 마찬가지였다. 제갈량이 온갖 전략을 다 써가며 공격할 때 사마의는 그저 성문을 닫고 기다렸다.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만 하면 이기는 게임이었으니까.
일상의 소소한 승부에서 이기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정작 인생의 큰 승부수를 던질 기회를 놓친다. 부장님의 개소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다가 팀에서 튕겨나가면 나중에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과장님의 비효율적인 지시에 매번 정면으로 맞서다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한다.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도교수가 말도 안 되는 실험을 요구할 때,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고 맞서봤자 당신만 손해다. 차라리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데이터로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게 낫다. 학회 발표에서 선배가 당신 연구를 터무니없이 지적할 때 "선배님 그게 아니고요."라고 맞받아치면 시원할까? 그 순간은 시원하지만, 그 선배가 앞으로 10년간 당신의 연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큰일을 할 수 있다. 오늘 작은 자존심 지키려다 내일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건 정말 븅신 같은 짓이다. 진짜 븅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척하는 것과 진짜 되는 것은 다르다. 한신은 가랑이 밑을 기어갔지만, 매일 밤 병법을 공부했다. 구천은 말똥을 치웠지만, 고국에 돌아가서는 나라를 강하게 만들 계획을 세웠다. 사마의는 성문을 닫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치밀하게 다음 수를 계산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약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더 강해지고 있었다. 참는 동안 실력을 쌓았다. 기다리는 동안 준비를 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단번에 끝낼 수 있었다.
반대로 정말 븅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참기만 하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 "나중에 보자"라고 말하면서 나중에도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굴욕을 참는 동안 더 약해지는 것. 그건 와신상담이 아니라 그냥 찌질한 거다.
그렇다면 언제 움직여야 할까? 언제 참았던 힘을 폭발시켜야 할까?
사마의의 답은 명확했다. "실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즉, 이길 수 있을 때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한신은 가랑이 밑을 기어갔지만, 그가 대장군이 되었을 때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지지 않았다. 구천은 20년을 참았지만, 준비가 끝났을 때 단번에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네, 알겠습니다"를 달고 살되,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당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라. 보통 때는 조용히 있다가 결정적인 회의에서 완벽하게 준비된 제안을 들고 나와라. 그럼 사람들은 놀란다. "쟤가 원래 저 정도였나?"
그게 전략이다. 평소에 100%를 다 보여주면 기대치만 올라간다. 그리고 그 기대치를 계속 충족시키려다 지쳐서 쓰러진다. 차라리 평소에는 70%만 보여주고, 30%는 아껴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120%를 발휘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제갈량은 천재였다. 하지만 과로로 죽었다. 사마의는 그보다 덜 천재였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역사는 사마의 가문의 것이 되었다. 항우는 강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자살했다. 유방은 그보다 약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한나라를 세웠다.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꼭 가장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유연한 사람이었다.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의 자존심보다 나중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당장 이기는 것보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적당히 웃어넘기고, 적당히 죄송한 척하고, 적당히 모르는 척하자. 그러다가 정말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그동안 아껴둔 에너지를 한 방에 터트리는 것이다. 그게 진짜 똑똑한 거다.
역사를 만든 사람들도 결국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들이다. 무조건 강해서 이긴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사마의는 성문 안에서 기다렸고, 한신은 가랑이 밑을 기어갔고, 구천은 말똥을 치웠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역사를 바꿨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오늘 부장님의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네" 하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3년 후 당신의 계획을 그려라. 오늘 팀장의 비난을 묵묵히 듣으면서도, 내년 승진 후 당신이 바꿀 시스템을 준비해라. 오늘 선배의 무시를 참으면서도, 5년 후 당신의 논문으로 대답할 준비를 해라.
그러니까 오늘도 적당히 븅신처럼 살자. 하지만 진짜 븅신이 되지는 말자. 참는 동안 갈고닦고, 기다리는 동안 준비하자. 그리고 언젠가 터트릴 한 방을 위해.
삼국지의 사마의가, 한나라의 한신이, 춘추시대의 구천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