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만의 ‘다이어트’

by 정희




다이어트하는 날, 내 삶의 또 다른 데모

딸이 보건교사로 일하는 학교의 저학년 아이가 언젠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학교 끝나고, 엄마랑 다이어트해요!" 딸이 웃으며 되물었다고 한다. "다이어트? 혹시 데이트 아니야?"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아, 맞아요! 그런 거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데이트와 다이어트를 헷갈린 그 아이의 말은 우리 모녀 사이에 작은 유행어가 되었다. 그 후로 함께 외출할 때면 그 아이의 행복함이 생각나서 "오늘은 다이어트하는 날이네"라며 웃곤 한다.




익선동에서 운현궁까지, 걷는 즐거움

딸과 도심 나들이를 했다.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내려 광화문까지 천천히 걸었다. 익선동 조그만 찻집에서 차를 마신 후, 루프탑에 올라 기와지붕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현대미술관 기프트 샵에 들러 예쁜 쟁반을 사고, 운현궁까지 걸었다.


작지만 고운 궁이었다. 왕족이나 양반들이 살았던 공간을 거닐며 옛사람들의 삶을 상상했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회사 근처에 있던 운현궁은 굳게 닫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의 생가이자,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저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새로 단장되어 개방되어 있었다.




브레이크 댄스와 최루탄, 그리고 연대

광화문 광장에서는 브레이크 댄스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 15세 이하 청소년들이 어찌나 잘하던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근육의 힘과 통제력, 박자에 대한 감각까지—타고난 재능과 훈련이 빚어낸 예술이었다.


놀랍게도 공연장 옆에서는 데모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 데모라니, 참 아이러니하고도 기발한 생각이다. 아마 더위를 피해 시원한 저녁을 택한 것이리라. 브레이크 댄스의 '에너지'와 시위대의 '열정'이 형태는 다르지만 닮아 있다.




나의 대학 시절은 데모, 그 자체였다. 유신이 막을 내리고, 전두환의 군사독재가 시작되던 때. 데모를 하고, 의식화 교육을 받는 것이 마치 의무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데모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묘한 짜릿함이 있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위험을 감수하며, 같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과의 강렬한 동지애. 최루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느껴지는 믿음과 책임감.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치며 옆 사람의 목소리에 힘을 얻었고, 체포의 위험 앞에서도 먼저 나서던 이의 용기. 그 순간, 나도 그만큼의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던 마음.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이상이 우리를 묶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데모에 참여했다. 임용고사 반대, 박근혜 정권 퇴진, 최근에는 윤석열 정권 퇴진까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어쩌면 조금은 우스운(?) 사명감을 품고 비장하게 나섰다. 하지만 마음 아주 깊은 곳에는 데모가 주는 짜릿함, "우리는 하나"라는 강렬한 인류애가 좋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런 감정에 중독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딸과의 '다이어트'가 내 삶의 또 다른 형태의 연대가 되었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기억을 나누는 이 시간들. 그 작고도 소중한 모든 순간이, 내 삶의 또 다른 '데모'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