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성이라는 같은 가면, 다른 맨얼굴

by 정희

HSP(초민감자)와 내향적 나르시시스트. 얼핏 보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둘 다 관계 속에서 예민한 안테나를 바깥으로 뻗어두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살얼음판을 걷듯 분위기를 읽는다.

그 섬세함만 놓고 보면 마치 같은 심리적 기제를 쓰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출발점부터 다르다.


HSP가 타인을 대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동감이다. 상대의 감정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걸 막지 못한다. 슬퍼하는 상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울고 있고, 기뻐하는 상대를 보면 그 기쁨이 전해져 같이 기쁘다.

그래서 HSP는 상대의 감정이 너무 지나치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조율하며 평화를 지키려 애쓴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다.


반면 내향적 나르시시스트의 집중은 확인이다. 그들에게 타인은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 훌륭한 나를 확인받고 싶어 하고, 텅 빈 내면을 채우려 한다. 타인의 반응이 없으면 낮은 자존감을 채울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경청은 닮은 듯 다르다. HSP는 상대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연결되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쓸모 있는지, 내가 파고들 틈은 없는지 계산하며 듣는다.

상대는 이해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둘 다 웃으며 대화를 주도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HSP의 웃음은 "당신과 안전하게 연결되고 싶다"는 신호이고, 나르시시스트의 웃음은 "나를 인정해 달라"는 갈망이다.

전자는 자극을 줄이려 쓰는 가면이고, 후자는 초라한 내면을 감추려 두른 포장지다.


만남이 끝난 뒤의 풍경도 다르다. HSP는 너무 많은 자극을 흡수해 방전된 채 홀로 자기만의 동굴을 찾는다. 나르시시스트는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하면 결핍에 시달리며 또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맨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느껴서 앓아눕고,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아 깊은 허기가 진다.


집중과 경청 뒤에 어떤 마음의 회로가 숨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이 느껴서 앓아눕는 쪽. 나는 그렇게 공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