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자가 누리는 어느 겨울날의 아산 나들이

by 정희

주말 아침, 약간 늦게 일어나 브런치를 먹으러 나섰다. 예전부터 자주 찾던 아산의 한 카페로 향하는 길.


교사로 근무할 때는 주말이면 의무감처럼 어딘가로 떠나곤 했지만, 막상 정년퇴직 후 시간이 넉넉해지니 오히려 나들이 횟수는 줄어들었다. 전에는 없던 시간을 쪼개서 다녔다면, 지금은 시간이 넘쳐나니 굳이 애써 쓰지 않게 된 느낌이랄까.

마치 부자가 언제든 쓸 수 있는 돈이 넉넉하기에 아등바등 소비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이제 시간 부자가 된 것인가, 생각하니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눈발이 조금씩 흩날리는 날이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산과 들의 모양새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우리나라는 정말 산이 많다. 국토의 70%가 산인 나라이니 당연한 풍경일 테지만, 새삼 우리가 산과 산 사이의 조그마한 평야를 터전 삼아 살아왔음을 실감했다.

산이 내어준 아주 작은 품에 조심스레 기대어 살아온 느낌이랄까.


가는 길에 공세리 성당을 멀리서 보았다.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볼 때마다 참 예쁜 성당이다. 13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의 조화, 35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성당을 감싸고 있는 풍경. '공세리'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충청도 전역의 세금을 모아두던 창고인 공세창이 있던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성당은 바로 그 세금 창고 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한때 세상의 재물이 모이던 그 자리에 이제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머문다.


지금은 평온한 들판이지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성당 언덕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 마을이었다. 세금을 실은 배들이 분주히 오갔을 그 바다가 이제는 넓은 평야가 된 것이다.

성당 언덕 위에서 주변 들판을 내려다보며 저 땅이 원래는 다 바다였다고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생각하는 사이 신정호 부근의 카페에 도착했다.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보며, 창밖의 풍경이 내 안으로 충분히 스며들 때까지 앉아 있었다.

교사 시절의 나였다면 식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겠지만.


모든 색이 옅어진 겨울의 신정호.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의 시간을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