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 추우니 따뜻한 곳이 그립다. 영하 10도 이하,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쏟아져 내려오는 날.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아, 맞아. 튀르키예.
쉰 살 즈음의 어느 겨울, 남편과 나는 9박 10일간의 튀르키예 여행길에 올랐다. 문명의 용광로라 불리는 그 땅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두바이를 경유해 13시간을 날아 도착한 그곳은 겨울이라기엔 참 따뜻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도, 코끝과 혀끝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날의 조각들을 다시 맞춰본다.
"천국인 줄 알았는데, 소금밭이었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뜻밖에도 짠맛이다. 호텔 뷔페에 들어서면 수십 가지 치즈와 햄, 소시지, 디저트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치즈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남편과 나는 동시에 멈칫했다.
치즈도, 고기도, 소스도 온통 혀가 얼얼할 정도로 짰다. 결국 그 거창한 진수성찬을 뒤로하고 우리가 구원처럼 매달린 건 오이와 토마토였다.
튀르키예의 강렬한 햇살을 받고 자라서인지 오이는 청량했고 토마토는 달큼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우리 집 식탁엔 튀르키예식 오이·토마토 식단이 빠지지 않았다.
애국가의 배신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가 우리 민족만의 상징이라 믿어온 남편은, 튀르키예 산천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를 보더니 진심으로 당황했다.
"소나무가 이렇게나 많아? 이게 말이 돼?" 처음엔 어이없어하다가 나중엔 같이 웃었다.
버려진 시간의 흔적
파묵칼레는 매체에서 너무 자주 접한 탓인지 막상 눈앞에 서니 "사진이랑 똑같네" 싶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울린 곳은 곁의 히에라폴리스 언덕이었다. 풀이 듬성듬성 돋아난 비탈 위, 무심히 흩어져 있는 유적 더미들. 그 적막함 속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위에서 내려다본 원형 극장은 금방이라도 고대 로마의 함성이 터져 나올 듯 웅장했다.
15년째 지키지 못한 약속
안탈리아의 구시가지 칼레이치 골목길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얀 회벽과 짙은 갈색 나무 창틀의 전통가옥들, 2층이 밖으로 툭 튀어나온 쿰바 구조 아래를 걷다 보면 수백 년 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골목 끝자락에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나타나는 푸른 지중해 수평선, 그리고 카페 의자 밑에서 나른하게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
패키지여행이라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지나쳤지만, 남편과 약속했다.
다음엔 꼭 자유 여행으로 와서 쿰바 아래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자고.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약속 하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스탄불, 그리고 기도
여정의 마침표는 이스탄불이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거대한 돔 아래서 수많은 권력자가 바뀌고 종교가 뒤섞여도 변치 않는 위용 앞에 숙연해졌다. 그 건축물은 그 자체로 튀르키예의 저력이었다.
15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다. 뉴스로 접하는 오늘의 튀르키예는 물가 상승과 대지진의 상흔을 여전히 수습 중이다. 그 견고한 성 소피아의 돔처럼 이 시련도 버텨내리라 믿는다.
소금기 가득한 뷔페 앞에서 오이 한 입에 행복해하던 그때의 우리처럼, 튀르키예 사람들도 다시금 평화로운 풍요 속에서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