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에 대하여
머릿속에서는 반짝이던 소재가 막상 흰 화면 앞에 서면 빛을 잃곤 한다. '이걸로 글을 쓰면 참 재미있겠다' 싶어 달려들었지만, 써 내려가다 보면 이야기는 빈약하고 주제는 흐릿해진다. 갖은 심폐소생술을 해봐도 결국 세상에 내놓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라 스스로 파기해 버리는 글들이 쌓여간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해 쓰인 글이다. 적어도 내가 쓰는 에세이만큼은 삶의 비릿한 내음이 진하게 묻어나길 바란다. 내가 두려워하는 형편없는 글이란 문장이 거친 글이 아니다. 뻔한 결론으로 서둘러 도망치는 글, 혹은 자기 가치관을 정답인 양 강요하는 글이다.
반면 소재가 빈약해도 마음에 쏙 드는 글이 나올 때가 있다. 예전에 쓴 〈놓아주는 연습〉에서, 나는 자식이 잘못되는 상황을 오직 마약, 자살, 범죄 세 가지로만 정의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그저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그 서술은 나만이 가진 시선이 투영된 결과였다. 소재의 화려함이 아니라 시선의 독창성.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이다.
그런데 글이 세상에 나갔을 때 마주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내가 좋게 평가하는 글과 독자가 사랑하는 글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스스로 미흡하다 느끼며 가볍게 내놓은 글에 독자들이 반응하고, 공들여 쓴 글은 외면받기도 한다.
왜일까 한참 생각했다.
독자는 작가의 완벽한 문장보다 그 문장 사이의 빈틈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자신의 노동량과 의도에 점수를 매기지만, 독자는 작가의 부족과 틈에 마음을 연다. 미흡하다고 느낀 글에서는 방어기제가 해제된 작가 본연의 목소리가 나오고, 독자는 그 날것의 진실에 반응하는 것이다.
나의 치열한 고민보다 솔직한 무너짐에 독자가 응답할 때, 나는 다시금 겸손해진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계속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