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에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필연적으로 파멸을 향해 흐른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가 항상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즉 엔트로피의 분산 정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말한다. 뜨거운 커피가 식고, 질서 있게 쌓인 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우주의 모든 별 역시 언젠가는 빛을 잃고 차가운 '열적 죽음'에 이를 운명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단편 〈최후의 질문〉에서 이 절망적인 과학적 사실을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로 풀어냈다.
소설 속 인류는 수조 년에 걸쳐 진화하며 인공지능 컴퓨터인 '멀티백'과 그 후계자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엔트로피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는가?" 인류가 육체를 벗어나 정신의 형태로 통합되고, 급기야 우주의 모든 별이 꺼져가는 순간까지도 지능은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과 시공간이 사라진 뒤, 인류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최후의 지능 '코스믹 AC'는 마침내 데이터 처리를 끝내고 답을 찾아낸다. 그리고 공허 속에서 선언한다. "빛이 있으라." 이 결말은 지능의 끝이 결국 새로운 창조, 즉 질서의 재구축에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아시모프의 소설은 픽션이다. 코스믹 AC의 "빛이 있으라"는 선언이 실제 물리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소설이 던지는 질문 자체는 픽션이 아니다. 엔트로피에 맞서 국소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이미 생명이 수십억 년 동안 실제로 해온 일이다.
생명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다만 외부 에너지를 끌어들여 자신의 내부에 일시적인 질서를 구축한다. 세포가 단백질을 합성하고, 인간이 도시를 세우고, 문명이 지식을 축적하는 모든 과정이 그러하다. 엔트로피의 총량은 늘어나지만, 그 흐름 안에서 지역적 질서를 창출하는 능력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인류가 앞으로도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문명은 붕괴할 수 있고, 지적 퇴행의 역사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궤적은 분명하다. 인류는 불을 발견한 이후 한 번도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풀리지 않는 질문 앞에서 탐구를 완전히 멈춘 적도 없다.
그 궤적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다. 우주의 열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지능을 가진 존재는 엔트로피의 흐름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빚어왔다. 그것이 창조다. 선언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실로서의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