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집에서 나를 야단치면서도 남들에게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인지를 자랑하곤 하셨다. 공부, 효도, 동생 돌보기... 주변인들에게 보여줄 성취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가 잘한 것을 말하면 어머니는 엄청 기뻐하셨고, 내가 조금이라도 잘 못한 것이 있으면, 선생님보다 더 화를 내셨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머니는 그런 행동이 자식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머니는 왜 그토록 체면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까.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가 아파서 등교를 못 해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잦은 지각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가끔 도망을 간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보다 아이의 불성실함만을 먼저 지적하는 선생님이 못내 서운했다. 나는 아이에게 학교생활의 성실함을 당부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엄마는 선생님이 너에게 크게 관심이 없고, 본인의 학생 관리에서 느끼는 불편함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서운하구나."
아들이 대학 시절, 여자 친구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자 아들은 거의 모든 공부를 전폐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사랑을 찾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여자친구와 미국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앞날을 망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화를 냈지만, 나는 젊은 날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 알기에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이러다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불법체류가 되면, 병역을 피하게 되면— 그러면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행하게도 15일 만에 초췌한 얼굴로 돌아와 ‘여자 친구와 이별했다’ 말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이 아이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주변에서도 아이에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쳐야지,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나의 보살핌이 혹시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독은 아닐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저마다의 속도로 뿌리를 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어린 나를 함께 키워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질문은 따로 있었다.
아이를 키웠다고 믿었지만, 실은 아이를 통해 나의 구멍 난 마음을 메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아이를 키운 사람인 걸까.
나는 어머니와 다르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방식만 달랐을 뿐 같은 욕망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오래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 답을 끝내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이, 어머니와 내가 공유한 마지막 한 가지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