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 2〉를 보고 왔다. 1편을 워낙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이번에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알록달록한 색감이 좋았다.
고산 지역 사람들의 옷처럼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채. 내가 모드 루이스의 화풍을 좋아하는 이유도, 글을 쓸 때 표지에 늘 그 그림을 곁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화려한 색감의 그림과 옷을 무척 좋아하셨다. 색이 많은 옷을 입고 친정에 가면 아주 예쁘게 입고 왔다며 칭찬하시던 아버지. 알록달록한 취향은 아마 우리 집안의 유전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캐릭터는 스라소니 포버트였다. 명망 높은 링슬리 가문의 막내아들인 그는 어리숙하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는 코믹한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며 사건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포버트를 보며 내가 어릴 적 형제가 많은 집에서 종종 보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온전히 받지 못한 아이들. 그중에는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끝없이 마모시키는 쪽을 택하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가면처럼 쓰고, 자신의 진짜 욕구는 깊숙이 숨긴 채. 반대로 인정받기를 아예 포기하고 비뚤어져 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관심이라는 소외보다 차라리 미움이나 꾸중이 나았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두 갈래 길은 달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 포버트가 보여준 뜻밖의 행보 역시, 가문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던 한 존재가 던진 마지막 비명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분명 재미있었다. 그런데 즐거움 뒤에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드 루이스의 그림처럼 밝고 선명한 색들을 그토록 좋아했던 것은, 삶에 숨어있는 이런 어두운 그림자들을 밝은 빛깔로 덧칠하고 싶었던 무의식적인 갈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