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세상을 읽는 언어로 삼는다

by 정희

나는 그림 보는 일을 즐긴다. 그중에서도 화가가 색을 어떻게 썼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이 습관은 일상으로 이어져 드라마를 볼 때도 인테리어의 색, 등장인물의 옷 색깔을 관찰하며 극의 분위기를 만끽하곤 한다.


매일 색을 살피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색을 선택하게 만드는 걸까.

나라마다 선호하는 색이 다른 이유는 취향의 차이를 넘어 자연환경과 문화와 역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햇빛이다. 북유럽 같은 고위도 지역은 햇빛이 약하고 푸른빛이 감돈다. 긴 겨울 동안 실내에 머무는 이들에게 파스텔 톤은 부족한 빛을 부드럽게 반사해 공간을 밝히는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케아로 대표되는 북유럽 인테리어가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서랍장이나 쿠션 하나에 강렬한 원색을 과감하게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채색 공간에 더해진 빨강과 노랑은 마치 겨울 숲에서 발견한 작은 열매처럼 공간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반면 열대 지역은 햇빛이 강렬해 연한 색은 쉽게 날아가 보인다. 진하고 화려한 원색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색채를 역사와 문화로 품은 곳들도 있다.


중국에서 붉은색은 복과 부의 상징이다. 중국 여행 중 음식점, 호텔 로비, 가로등 광고물까지 온통 빨간색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중동에서 초록은 생명과 낙원을 뜻한다. 사막 한가운데 살아온 이들이 초록을 신성시하는 것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프랑스 영화는 빛바랜 듯한 빈티지함과 회화적인 색채가 도드라진다. 영화 〈남과 여〉는 서사도 훌륭하지만, 모네의 그림처럼 서정적인 색감이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도 영화는 반대다. 원색의 함성이 화면을 뚫고 나올 듯 쏟아진다. 색의 축제 홀리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색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이렇게 색의 지도를 그리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색이 궁금해진다. 교직에 있을 때 색채에 조예가 깊은 동료 선생님이 우리의 퍼스널 컬러를 찾아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적이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쿨톤의 그린, 웜톤의 옐로 같은 명확한 답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유독 내 색만큼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며 난처해했다.


한참을 고민하는 그를 보다 못한 동료들이 "그냥 어떤 색도 다 잘 어울리는 것으로 합시다!" 하며 기분 좋은 합의점을 찾아주었다. 모두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 막연한 결론이 사실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색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세상의 팔레트가 무한하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색이 함께 춤추는 듯한 알록달록한 조합을 유독 좋아한다. 딸아이는 "애들이 좋아하는 색 같다"라고 놀려대지만, 알록달록한 취향은 내게 새로울 것 없는 아주 오래된 본성 같은 것이다.

강렬한 햇빛이 색을 선명하게 만들듯, 다채로운 색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나의 일상은 조금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에게 색은 세상을 읽는 즐거운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