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무렵, 유행하던 핫도그를 자꾸 '핫그도'라고 읽어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저 내가 부주의한 탓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교직에 몸담으며 뒤늦게야 그것이 가벼운 난독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나 여전히 가끔 글자를 바꿔 읽어 가족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난독증이 있는 내게 영상은 구원 같은 매체였다. 글은 문자를 소리와 의미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해 에너지가 많이 쓰이지만, 영상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직관적으로 의미가 들어온다.
어렸던 60, 70년대에는 영상 매체가 많지 않아 글을 많이 접하며 자랐지만, 만화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그것이 오늘날의 영상과 비슷한 역할을 해주었다.
교사가 된 후에는 수업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처럼 난독증이 있는 아이들이 우리 교육 환경 속에서 얼마나 고단할지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글 읽기를 강요하기보다 영상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당부했다. 영상은 남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는 것과 같아서, 한 번만 보고 넘기면 그 정보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곱씹어야 비로소 나의 생각으로 소화된다고.
그에 비해 글은 행간을 상상력과 경험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해석의 자의성이 강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영상을 제작하는 대신 글을 쓴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여백과 오류가 좋기 때문이다. 독자는 자신이 겪어낸 삶의 정도에 따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읽어낸다. 나는 그 불완전한 과정이 좋다.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이기에 오히려 글을 쓰는 시간이 좋다.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자유롭게 흩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 해방감이 있다.
그렇다고 독자를 향한 마음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내내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지금 내가 혹시 영웅 서사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거창한 책임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손난로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 옆에서 같이 걸어가는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로 편안하게 읽히기를. 그래야 나도 부담 없이 오래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