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교사의 시선,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슈퍼마켓과 가우디의 작품들

by 정희

도심의 풍경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도시가 오래됐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라시아 거리와 람블라스 거리가 지척인 도심 호텔에 머물렀는데, 바르셀로나의 밤은 창문마다 사람 사는 불빛이 살아 있었다.

슈퍼마켓이 말해주는 것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람블라스 거리의 까르푸 슈퍼마켓이었다. 서울로 치면 명동 한복판인데, 관광객용 기념품 가게가 아니라 현지 주민을 위한 슈퍼마켓이 그 비싼 땅값을 견디며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슈퍼마켓이 유지되려면 탄탄한 거주 인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바르셀로나의 도심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비밀은 19세기 도시 계획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설계한 팔각형의 거주 블록, '만사나'에 있었다. 그는 블록의 모서리를 과감하게 깎아 교차로마다 광장을 만들었고, 1층에는 상가를, 위층에는 주거지를 두어 일상과 업무가 한 블록 안에서 숨 쉬게 했다.


여기에 최근 바르셀로나가 추진하는 '슈퍼블록' 정책은 도심의 주인 자리를 자동차에서 보행자에게 돌려주었다. 9개의 블록을 하나로 묶어 차량 통행을 제한하자, 엔진이 멈춘 도심 한복판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만드는 유쾌한 소란으로 북적였다.


가우디라는 결실

세르다는 질서를 꿈꿨다. 팔각형으로 깎인 모서리, 균일한 블록, 누구에게나 동등한 햇빛과 바람. 그의 격자는 평등을 위한 설계였다.

가우디는 그 질서 위에서 곡선을 그었다. 세르다가 수학으로 풀어낸 햇빛을, 가우디는 나무가 가지를 뻗듯 기둥을 올려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깔아놓은 바닥 위에서 다른 사람의 건물이 자랐다.

구엘 공원, 성가족 성당,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곡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물, 타일을 깨뜨려 붙인 벽면, 해골을 연상시키는 파사드.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그 건축물들 앞에서 남편은 "솔직히 조금 무섭다"라고 했고, 나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가족 성당 내부는 달랐다. 고개를 들자 기둥들이 위로 올라가며 나뭇가지처럼 갈라졌고, 그 사이로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왼편은 초록과 파랑으로, 오른편은 주황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람이 지은 건물 안에 있는데, 차가운 대리석의 질감은 사라지고,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무리가 마치 숲의 습기처럼 눅눅하게 와닿았다.


창문마다 켜진 불빛이 가우디의 곡선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