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의 끝에서 만난 빛의 성채
꺼지지 않으려는 불빛
교직에 몸담았던 시절, 나는 주로 겨울에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일 년 중 가장 고된 작업인 생활기록부 작성을 마치고 나면, 나에게 선물을 주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르면 봄이나 여름부터 여행을 계획했는데, 학교 업무의 중압감이나 일상의 갈등이 밀려올 때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래, 겨울이면 여행을 갈 거야. 조금만 참아. 이런 힘듦은 그곳에 다 털고 오자.' 어쩌면 그 주문은 나를 버티게 하는 숨구멍이었는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다. 한국은 아주 추운 겨울날, 나는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우치 공항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바로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으로 갔다. 토스카나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구릉지 위로 짙은 초록색의 날렵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길 끝에는 어김없이 붉은 기와지붕의 농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사이프러스는 주로 묘지에 심는 나무라고 했다.
하지만 유독 이곳 토스카나에서는 길가에 심어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했다. 죽음의 상징이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것, 그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토스카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를 당황시킨 것은 또 있었다. 산꼭대기에 얹혀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도시들이었다. 그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산 아래에서 푸니쿨라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중에서 나는 오르비에토와 시에나를 방문했다.
슬로시티의 발상지인 오르비에토는 거대한 암반 위에서 자연과 하나 된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반면 시에나는 중세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도시였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캄포 광장과 흑백 줄무늬가 선명한 시에나 대성당.
그리고 골목마다 마주치는 수많은 교회 건축물들.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의 위세를 짐작하게 했다.
두 도시는 달랐지만,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세만큼은 같았다.
의문이 생겼다. 대개 산을 등지고 평지에 마을을 이루는 우리와 달리, 왜 그들은 그 높은 산 위에 도시를 건설하는 고단함을 자처했을까.
나중에 찾아본 그 이유는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었다. '보르고'라 불리는 이 도시들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용 요새였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려 했던 절박함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성을 쌓게 한 것이다. 여기에 습한 저지대의 말라리아를 피하려는 이유도 더해졌다.
중부 지역의 풍부한 응회암은 단단하면서도 가공이 쉬워, 절벽 자체가 천연 요새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전쟁의 위협, 전염병에 대한 공포, 자연이 준 재료. 이 세 가지가 합쳐져 신비로운 산꼭대기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밤이 되면 산꼭대기 도시의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그 불빛이 아름다웠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침략과 병마를 이겨내고 삶을 지켜내려 했던 간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