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와 유발 하라리의 담론
며칠 전 막을 내린 다보스 포럼에서 내 관심을 가장 끈 것은 일론 머스크와 유발 하라리의 엇갈린 전망이었다.
머스크는 AI를 인류를 돕는 최강의 도구로 본다. 그의 세상에서 인류는 조만간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어 풍요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반면 하라리는 AI가 스스로 결정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해 인간의 언어를 해킹하고, 인간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 채 무용지물 계급으로 전락할 것이라 경고한다.
나는 평소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를 깊이 읽었던 터라 그의 경고를 가볍게 듣지 않았다. 특히 인류가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뒷담화', 즉 상상한 것을 언어로 소통하는 추상화 능력에서 찾은 그의 분석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인물이기에 그의 전망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마음은 머스크 쪽으로 좀 더 기울어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 1980년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6·25 전쟁 전 북한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셨다. 전쟁 때 피란을 내려와 농사지을 땅이 없자 두부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으셨다. 그런 할머니는 급속히 산업화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며 늘 걱정하셨다.
"농사지을 땅에 이렇게 건물을 많이 지으면 어떡하냐. 나중에 너희는 무얼 먹고 사니."
할머니는 그 걱정을 해결이라도 하듯 우리 집 옥상에 흙을 지고 올라가 밭을 일구셨다. 매일 물을 길어 나르며 배추를 돌보셨고, 어느 해엔가는 그 작은 옥상 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셨다.
할머니에게 땅이란 오직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신성한 곳이었지, 건물을 짓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건물 위에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일구어냈다. 할머니가 걱정했던 그 시대보다 지금이 훨씬 윤택하다.
AI가 도래할 미래가 인류를 파멸로 이끌지, 아니면 하라리의 염려처럼 대부분의 인간이 무용지물 계급으로 전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인류가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념이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 앞에서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포보다는 낙관이 늘 힘이 세다는 것만큼은, 세상을 살아보니 알 것 같다.
나는 미래학자도, 기술 전문가도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은퇴한 뒤, 이제는 글을 쓰고 주식 투자를 하며 동네 체육센터에서 줌바 댄스를 즐기는 평범한 할머니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전망 사이에서, 춤추는 동네 할머니의 이 소박한 단상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