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보그가 되었다

by 정희

어린 시절에 '600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같은 미국 시리즈물을 엄청 재미있게 보고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브라운관 흑백 TV에 화질도 아주 흐려서 뭔 재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TV는 아주 훌륭한 문명의 이기였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사이보그였다. 불의의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지만, 생체 공학 기술로 다시 태어났다. 눈과 팔다리, 귀를 기계로 재건하며 얻게 된 초능력으로 불의를 처단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과학 기술의 힘으로 몸을 보수하고 능력을 향상한다는 개념을 그때 처음 알게 된 셈이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내가 그 사이보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비록 지구 평화가 아니라 나의 '치아 평화'를 위해서지만 말이다.


의사가 처음부터 수술이 좀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미리 마음의 각오는 하고 갔으나, 치과 의자에 앉아 마취 주사를 맞고 있으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의사가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심장은 두근두근 난리가 났다.


치과에서의 공포감은 왜 익숙해지지 않을까? 어떤 일이든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덜 무서울 법도 한데. 마취가 된 것을 확인한 후 의사가 뭔가를 누르며 절개를 시작했다. 둔탁하게 누르는 느낌이 나더니, 전동 드릴로 내 뼈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전동 드릴로 공사하듯이 구멍을 뚫다니. 아프지는 않았지만, 드릴의 진동이 턱뼈를 타고 두개골 전체로 울려 퍼질 때, 나는 비로소 감정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가공되어야 할 단단한 재질의 로봇이 된 것 같았다.


무언가를 넣고 꿰매고 소독하는 등 1시간가량 정교한 작업이 이어진 후, 의사는 입이 큰 환자가 가장 좋다며 내가 계속 입을 크게 벌려준 덕분에 수술을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뼈저리게 결심했다. 이제부터라도 이를 열심히 닦아 내 남은 천연 치아들을 기필코 사수하리라. 이 나이에 다시 양치질 결심이라니, 스스로도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모든 처치가 끝난 후 엑스레이로 내 턱뼈에 박힌 임플란트 나사를 확인했다. 1시간에 걸친 의사의 수고가 내 뼛속에 남긴 것이 고작 이 작은 나사 하나라니. 허무했다. 하지만 동시에 명확해졌다. 나는 이제 진정으로 사이보그가 된 것이다.


이식된 뼈가 자리를 잡으면 기둥을 세우고 치아를 완성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한다. 완전한 치아를 갖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어쨌든 내 몸속에 나사가 심어졌다. 무기물과 유기체가 결합했으니, 사전적 의미로는 사이보그가 맞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600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처럼 초능력 하나쯤 덤으로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