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질서 없이 떠돌며 나를 괴롭힌다. 때로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잠 못 드는 밤을 찌르고, 때로는 무거운 안개가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AI는 왜 환각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 인류는 이러다 영원한 무용지물 계급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주식 시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족 관계는 왜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이기도 한 걸까?
오늘 밤 나를 찌르는 가시는 어제 나누었던 차가운 대화의 파편일 때도 있고, 화면 속에서 붉고 푸르게 일렁이던 숫자들의 잔상일 때도 있다. 이 집요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쓰는 행위다.
머릿속에 꽉 찬 생각의 타래를 문장으로 하나하나 뽑아내어 종이 위에 쓰고 나면, 요동치던 내면은 잠시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길지 않다. 숨을 고르던 의문은 다시 사유의 바다를 헤매다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고, 이전보다 더 매서운 질문을 퍼붓는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파편화된 자료를 찾아 읽고, 타인의 시선을 빌려와 내 생각의 틀에 맞춰본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버무려진 정보들은 곧바로 글로 나오지 않는다.
내 안의 감정과 논리에 절여져 깊은 맛을 내기까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유가 무르익도록 자료를 뒤지고 책을 읽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마치 먹이를 찾는 표범처럼 끝없이 방황하며 답을 찾아간다.
생각이 논리에 절여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억지로 펜을 잡지 않는다. 대신 음악에 몸을 맡기고 땀을 흘리거나, 의미 없는 풍경을 응시하며 내면의 항아리가 발효되기를 기다린다. 설익은 문장은 독이 되지만, 충분히 익은 문장은 약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림 끝에 사유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게 있어 글은 방황하던 모든 생각이 마침내 안착하는 종착역이다. 머릿속에 있을 땐 나를 괴롭히던 것이 종이 위에 적히는 순간 관찰해야 할 대상이 된다. 글로 마침표를 찍는 행위는 뇌에게 "이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이제 쉬어도 좋다"라고 보내는 일종의 의식이다. 마침표는 감옥의 문이 열리는 소리다.
글자로 쓰인 고통은 더 이상 나를 휘두르지 못하고 종이 위의 화석이 된다.
비로소 나는 나를 가두었던 생각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평온한 관찰자의 눈으로 삶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라는 존재를 더 단단하게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고 있던 생각이라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석방하는 해방의 의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