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이름의 감옥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을 갖고 태어난다. 누군가에게 그 껍질은 '단정한 옷차림'이나 '완벽한 평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남들보다 우월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일 수도 있다.
평생을 그 껍질을 닦는 데만 바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껍질에 아주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택제를 찾아 헤맨다. 남들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껍질을 비춰보며, 그 안의 알맹이가 어떻게 말라가는지는 보지 못한다. 그 마음을 나는 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거울 앞에 서 있었으니까.
껍질을 깨는 고통, 그리고 해방
나는 오랫동안 교단이라는 견고한 껍질 속에 살았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는 늘 어깨를 펴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일정한 틀 안에 가두기도 했다. 정제된 언어와 단정한 태도라는 광택제를 바르며, 나는 그것이 나의 전부인 줄 알았다.
퇴직 후, 나는 스스로 그 껍질을 망치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줌바 센터에서 땀을 흘리며 망가진 모습으로 춤을 출 때, 주식 시장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나의 무지를 인정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브런치에 내 마음의 밑바닥을 솔직하게 글로 써 내려갈 때 껍질은 조각조각 부서졌다.
껍질이 깨지는 소리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때로는 부끄러웠고, 때로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 아팠다. 하지만 그 깨진 틈으로 비로소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가진다는 것
껍질을 깨고 나온 자리에는 흉터가 남았다. 하지만 그 흉터 위로 돋아난 것은 다름 아닌 '날개'였다. 이제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껍질의 광택을 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롭게 비상하는 법을 배운다.
껍질 속에 머무는 삶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익숙하고, 또 얼마나 안전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알고 있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광택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바람을 느꼈다고. 그리고 그 바람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고.